맑은옹달샘 2024. 2. 10. 08:36

설<축복>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주인의 귀환을 깨어 기다리는 종들이 복을 받는다는 말씀(루카 12,35-38)과 사람의 아들이 갑자기 오실 것임을 명심하라는 말씀(루카 12,39-40)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루카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위하여 남겨주신 최후의 행위는 ‘축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장면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루카 24,50-51)

그렇습니다.

우리는 ‘축복받은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생명과 자비를 입은 존재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입은 존재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 생명을 주시고, 당신 존재를 건네주셨습니다.

그러기에 비록 지금 내가 그 어떤 어려움에 있다하더라도, 그 속에서 축복을 느끼는 자는 진정 복된 자입니다.

‘복’이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깨닫는 것입니다.

곧 지금도 우리와 ‘동행하시는 주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처럼 축복은 궁극적으로 하느님 존재 자체를 깨우쳐줍니다.

따라서 ‘축복받은 사람’이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존재와 자비에 깨어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에 깨어있는 만큼, 꼭 그만큼 축복받은 사람이 됩니다.

성경에서 ‘축복’은 하느님의 놀라우신 자비를 말합니다.

축복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바레크)는 ‘어떤 것을 선사함’이요, ‘주어진 선물’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생명체만이 ‘축복’을 받을 수 있고, 무생물은 하느님께 봉사하기 위해 ‘축성’될 뿐입니다.

‘축복’이란, 말씀과 그 말씀의 신비를 통해 표현되고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곧 ‘축복’은 말씀입니다.

‘좋은 말’(εύλογία, benedictio), 곧 좋게 되기를 빌어주는 말이요, 좋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요, ‘위하여’ 건네주는 말입니다.

그리고 축복을 빌어주는 이른 바 ‘축복기도’는 아주 간단합니다.

"주님, 그를 축복해 주십시오.

당신의 축복이 실현되도록 그가 응답하게 하소서!

저도 그를 축복합니다."

참 묘한 것은, 그렇게 축복기도를 하면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렇게 할 때, 이미 자기 자신이 변한 것입니다.

거부하고 미워하던 그 상대를 축복해주는 그 순간, 변화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이미 자신 안에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미 자신 안에서 그를 ‘위하는 마음’을 북돋으신 까닭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 변화됩니다.

이 소박한 우리의 ‘축복기도’는 우리에게 당신의 권능에 응답할 수 있는 장을 열어 줍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도록 공간을 열어 드립니다.

그분의 자비가 흘러들게 하고, 그분 존재를 건네받게 합니다.

다시 한 번 ‘축복’을 빕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받아 누리는 축복의 한해 되길 빕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대를 통하여 세상의 모든 이가 복을 받을 것"입니다.(창세 12,3)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행복하여라. ~깨어있는 종들!”(루카 12,37)

주님!

깨어있게 하소서!

단지 잠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임을 기다리게 하소서!

그 기다림은 이미 축복입니다.

그리워하는 임을 이미 품고 있는 까닭입니다.

기다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열망을 품고 그리워하게 하소서!

그리움 속, 임이 나를 이미 품고 있는 까닭입니다.

오늘, 임이 날 그리워하는 희망 안에 제가 깨어있게 하소서!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