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곰삭한 맛

<지는 해 좋다>

맑은옹달샘 2024. 2. 19. 11:20

<지는 해 좋다>

지는 해 좋다

볕바른 창가에 앉은 여자

눈 밑에 가늘은 잔주름을 만들며

웃고 있다

이제 서둘지 않으리라

두 손 맞잡고 밤을 새워

울지도 않으리라

그녀 두 눈 속에 내가 있음을

내가 알고

나의 마음속에 그녀가 살고 있음을

그녀가 안다

지는 해 좋다

산그늘이 또 다른 산의 아랫도리를 가린다

그늘에 덮이고 남은

산의 정수리가

더욱 환하게 빛난다.

 

- 나태주 시집 <사랑만이 남는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