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옹달샘 2024. 2. 29. 04:49

종교 1 - 이제민 신부

그리스도교를 만나기까지 동양에서는 종교(Religion)라는 개념이 없었다.

‘종교’라는 개념 없이도 우리 조상들은

우리가 ‘종교적’이라 부르는 삶을 살 수 있었다.(스미스)

종교는 삶이고 삶은 언어 이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종교라는 개념이 종교적으로 사는 데 방해물일 수 있다.

‘종교(宗敎)’라는 동양의 개념은 19세기에 서구 유럽의

‘렐리지오’(Religio)라는 개념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신조어(新造語)로서 ‘최고의 가르침’, ‘거룩한 가르침’을 의미한다.

교(敎)로 번역하기도 하였는데,

이 경우 렐리지오는 어떤 틀을 갖춘 제도로서의 종교라기보다

제도화할 수 없는 신앙을 말한다.

동양에서 렐리지오(종교)는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의미에서

붓다의 가르침, 공자의 가르침, 예수의 가르침,

또는 붓다의 교(불-교), 공자의 교(유-교),

예수의 교(예수-교, 천주-교, 그리스도-교) 등으로 존재한다.

말하자면 서양이 표시하는 식의 종교(렐리지오),

즉 붓다주의(Buddh-ismus), 공자주의(Konfuzian-ismus),

도주의(Tao-ismus), 무당주의(Schaman-ismus)는 없다.

공자는 있어도 유-교는 없었고, 부처님은 있어도 불-교는 없었다.

동양은 이들의 가르침이나 삶을 ‘렐리지오’라는 구조에 넣어

선포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직 붓다와 공자와 예수 그리고 그들의 말씀이 있었을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스 큉의 다음 말은 옳다.

“종교들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 자신이 ... 인류의 원천이요 마지막 목표이다.”

그러기에 일찍이 그리스도교보다 먼저 한국에 들어온 종교들은

그리스도교에서처럼 사람들을 규칙적으로 사찰에 참배하도록 강요하지 않았으며,

하나의 제도로서 종교에 속하도록 또는 개종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또 그리스도교가 한 것처럼 불교와 비-불교,

유교와 비-유교 등의 구분도 하지 않았다.

모든 종교들은 일상의 삶에서 서로 얽혀 있어서 이 종교 없이 저 종교를,

저 종교 없이 이 종교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오히려 불가능하였다.

한 인간 안에서도 그러하여, 한 인간은 불교도이며 동시에 유교도일 수 있었다.

한 인간에게 어느 종교에 속하는가 하는 물음은 별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한국은 하나의 종교로 특징지을 수 없는 종교 다원사회였다.

서구처럼 하나의 그리스도교 국가가 될 수 없었고

태국처럼 하나의 불교 국가가 될 수 없었다.

서구에서처럼 그리스도인이기에 모슬렘이 될 수 없다거나

모슬렘이기에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는 경우도 펼쳐지지 않았다.

그리스도와 하느님을 알기 위해 꼭 제도 교회에 속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한국에는 유럽과 같은 의미의 ‘종교’가 없기에

유럽에서처럼 ‘종교간 대화’를 시도한 적도 없었다.

종교간 상호 교환작용이 일상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음으로

학문적으로 ‘종교간 대화’를 시도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였다.

종교의 가르침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삶 속으로 스며들었으며,

그렇게 종교들의 가르침도 대화 이전에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스며든 것이 한국 종교역사의 특징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교회헌장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교회는 자신의 활동을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에

또는 민족들의 고유한 의례와 문화에 심어져 있는 좋은 것은

무엇이든 없어지지 않도록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과 악마의 패배와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치유되고 승화되며 완성되게 한다.”(교회헌장 17).

종교는 종교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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