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곰삭한 맛
<그 겨울의 시>
맑은옹달샘
2024. 3. 24. 11:35

<그 겨울의 시>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한겨울 얇은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왠지 슬픈 노래 속에
눈물을 훔치다가
눈산의 새끼노루처럼
잠이 들곤 했었네
-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 '그 겨울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