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옹달샘 2024. 8. 2. 09:19
 

<황혼>

늙어가는 길

처음 가는 길입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입니다.

무엇 하나

처음 아닌 길은 없지만,

늙어가는 이 길은

몸이 마음과 같지 않고 방향 감각도

매우 서툴기만 합니다.

가면서도

이 길이 맞는지?

어리둥절

할 때가 많습니다.

때론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보곤 합니다.

시리도록

외로울 때도 있고,

아리도록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어릴 적 처음 길은

호기심과 희망이 있었고,

젊어서의 처음 길은

설렘으로 무서울 게 없었는데,

처음

늙어가는 이 길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언제부터 인가

지팡이가 절실하고,

애틋한 친구가

그리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도

가다 보면 혹시나!

가슴 뛰는 일이

없을까 하여

노욕인 줄 알면서도,

두리번 두리번

찾아 봅니다.

앞 길이 뒷 길보다

짧다는 걸 알기에

한발 한발 더디게

걸으면서 생각합니다.

아쉬워도

발자국 뒤에 새겨지는

뒷 모습만은,

노을처럼

아름답기를 소망하면서

황혼 길을

천천히 걸어갑니다.

꽃보다 곱다는 단풍처럼

해돋이 보다

아름답다는 해넘이처럼,

그렇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 시인 / 이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