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얼마 만큼 있는 게 가장 좋은가
돈은 얼마 만큼 있는 게 가장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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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어제 먹은 밥은 있어도 어제 먹는 밥은 없다 . 내일 먹을 밥은 있어도 내일 먹는 밥은 없다 . 지금 너에게 있는 건 지금 먹는 밥이 전부다 . 먹은 밥이나 먹을 밥은 세상천지에 없는 밥이다 . 어찌 밥만 그러랴 ? 없는 것들에 휘둘리지 말고 있는 것이나 고맙게 받아들여 그것으로 살아라 . 아멘 . 방금 이 말씀을 저에게서 온전히 이루어주십시오 .
# 꿈꾸면서 내용을 메모하는데 글자가 자꾸 바뀐다 . 여러 번 쓰고 다시 써보지만 그럴 때마다 보면 어느새 바뀌어 있다 . 결국 다음 세 마디를 메모 아닌 기억으로 남겨둔다 . “ 아무의 길 → 아무의 죽음 → 아무의 삶 ” 아무의 육(肉)은 삶에서 죽음으로 가지만 영(靈)은 죽음을 거쳐 삶으로 간다 .
사람은 영을 담은 육이 아니라 육에 담긴 영이다 . 이 진실을 어디에 적어두지 말고 가슴에 새겨두라는 말씀 ?
지금 여기에 현존하라는 말은 모든 것을 한님께 맡기라는 말이다 . 이 쉽고 좋은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 있지도 않은 어제와 내일에서 헤매는 오랜 버릇의 힘이 실로 막강하구나 . 하지만 사람의 힘으로는 못한다 해도 한님이 그것을 못하실 리 없다 . 오 , 어머니 한님 ! 저 여기 이렇게 있습니다 , 어머니 .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다짐하고 다짐한다 . 오냐 , 한님을 진실로 믿는다는 게 어떤 건지 반드시 체득하고 말리라 . 우선 언제 어디서나 먼저 말하지 않는 것부터다 . 아무야 , 이제부터 네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렇다 또는 아니다 두 마디가 있을 뿐이다 . 묻지 않은 말에 답하지 말라는 스승님 유언 말씀을 철두철미 지켜보자 .
#방바닥 위를 작은 벌레가 기어간다 . 손가락으로 건드리자 도르르 몸을 말아 죽은 시늉을 한다 . 살그머니 집어 창밖에 내려놓으니 조금 있다가 고물고물 기어간다 . 녀석 , 아예 죽지는 않고 죽은 척 시늉하여 살아나는 길을 그 작은 몸으로 터득했더란 말인가 ?
픽사베이
# 관옥을 암살하라는 상부의 지령을 받았다는 시인 X 가 종적을 감추었다 . 그가 머물던 곳에서 쪽지가 발견되었다 . “ 사체에 총알을 박는 것은 시인 킬러의 자존심이 허락 않는다 .” 꿈속에선지 깨어나선지 무슨 족쇄가 풀린 느낌이다 .
오냐 , 오늘 하루만이라도 명실공한 송장으로 살아보자 . 슬기가 전화로 “ 오늘 예배는 ?” 하고 묻는데 대꾸를 못한다 . 속으로만 , 예배 ? 드리게 되면 드리지 뭐 , 한다 . 효선이 건네는 주스를 마신다 . 배가 좀 고프지만 밥 먹자고 하지 않는다 .
속에서 누가 묻는다 , 그럼 누가 시키지도 청하지도 않은 번역은 왜 하느냐 ? 답한다 , 나에게 그 질문은 누가 시키지도 청하지도 않은 숨은 왜 쉬고 오줌은 왜 누느냐고 묻는 것과 같구나 .
조금 기다리니 낮잠 한숨 자고 난 효선이 밥상을 차리며 함께 먹잔다 . 된장찌개에 쌀밥 . 맛있다 . … 현관문 열지 않고 하루를 보낸다 . 효선은 어디 깊숙한 곳에 유폐된 기분이란다 .
# 백척간두 에 진일보 란 무슨 말인가 ?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 온몸을 던지라는 말이다 . 할 수 있겠느냐 ? 그럴 수밖에 없으면 그럴 수밖에요 . 달리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 ? 이 허수아비 같은 물건한테 . 맞다 , 너는 허수아비다 . 하지만 그냥 허수아비가 아니다 . 내가 뜻이 있어서 공들여 만든 허수아비다 . 몸 함부로 굴리지 마라 . 아멘 .
#아침에 효선이 말한다 , 수중에 있는 돈으로 오두막 짓자고 . 눈물 날만큼 고맙다 . 음 , 이렇게 수도자의 간소한 삶에 대한 어려서부터의 꿈을 이루어주시는가 ? 소인 ( 素仁 ) 친구라는 건축사를 성동에서 만나 점심 대접받고 헤어지면서 말한다 , 단칸방 전셋집 한 채 지어달라고 . 어제 중노동으로 지쳤던 효선에게서 신선한 기운이 되살아나는 게 보인다 .
이현주 목사와 함께 마음공부를 하는 사랑어린배움터 식구들. 사진 사랑어린배움터 제공
#꿈에 글을 읽었는지 썼는지 모르겠다 . 대강 이런 내용이다 . … 이미 일어난 일을 두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지 말자 . 현실을 부정하려는 에고의 술책이다 . 일어난 일은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났으니까 일어난 거다 . 그 원인을 캐지도 말자 . 이 일이 왜 일어났느냐는 질문은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 .
사실 우리는 본인이 왜 , 어떻게 해서 , 여기 있게 되었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 물으려면 이 일이 우리에게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 무엇을 일러주고 있는지 , 그것을 묻자 . 여기에 창조주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는 길이 있다 .
# 번역하다 말고 드는 생각 . 돈은 얼마만큼 있는 게 좋은가 ? 많을수록 좋다 ? 천만의 말씀 . 경험이 말해준다 , 그렇지 않다고 . 적을수록 좋다 ? 그도 아닌 말씀 . 쓸 만큼 있는 게 좋다 ? 말이 안 되는 소리 ! 그 ‘ 만큼 ’ 이라는 게 한이 없는데 어디까지가 쓸 만큼인가 ? 돈은 ,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 지금 있는 만큼 있는 게 가장 좋다.
왜냐하면 그것이 저한테 있는 유일한 것이며 전부니까 . 게다가 , 무엇보다도 , 좋은 것밖에 없는 한님이 주신 거니까 .
# 가슴에 문신처럼 새겨진 글씨를 지우려고 가슴을 긁다가 꿈에서 깨어난다 . 이런 글이다 . “ 너는 무엇에 의하여 해방된 무엇에 의하여 해방된 무엇에 의하여 해방된 … ” 그러니까 작은 틀에서 나와 큰 틀로 들어가는 끝없는 과정이 네 인생이라는 말이다 .
그렇다면 안심이다 . 언제 어디서나 너를 지켜주는 틀 속에 네가 있다는 , 태어남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들이 그것을 통하여 작은 틀에서 나와 큰 틀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 게다가 네가 너를 해방하라는 게 아니고 먼저 해방된 무엇이 너를 해방시킨다는 얘기 아닌가 ? … 살려고 애쓸 것 없다 .
글 관옥 이현주 목사
***이 시리즈는 순천사랑어린배움터 마루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