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맑힐 물

들숨 없는 날숨은 없다

맑은옹달샘 2024. 10. 26. 18:38

들숨 없는 날숨은 없다

 

픽사베이

-수도승(修道僧) 셋이 그동안 공부한 것을 테스트 받는다. 주먹만 한 돌을 망치로 내려쳐서 그것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고 공부의 진도가 어디까지 왔는지 알아보는 거다.

첫째 비구가 망치로 힘껏 내려치자 부서진 작고 큰 돌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둘째 비구가 내려치자 사과를 칼로 쪼갠 것처럼 돌이 두 조각으로 갈라진다. 셋째 비구는 망치로 돌을 내려치지 않고 살짝 건드린다. 그러자 돌이 한 바퀴 돌면서 같은 모양의 돌 세 개로 나뉘어 저마다 한 바퀴씩 돌고 멈춘다. …

첫째 비구는 아직 갈 길이 멀고 둘째 비구는 반쯤 왔고 셋째 비구는 거의 다 왔구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꿈에서 나온다. 수도(修道)란 무엇인가? 인위의 힘(force)을 자연의 힘(power)보다 크게 부리던 사람이 거꾸로 자연의 힘 앞에서 인위의 힘을 비우는 것, ‘내가 만든 가짜 나’를 비우고 그 자리를 ‘한님이 지으신 참 나’로 채우는 것, 여기에 수도의 목적이 있는 것 아닐까?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두고 한 말이 새삼스레 가슴을 울린다. “사람은 하늘이 내려주시지 않으면 어떤 것도 받을 수 없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에 앞서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했지. 자네들이 그 말을 들은 증인일세. …

아무쪼록 그는 커져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하네.” 이 마음으로 평생을 살았기에 “내가 저보다 큰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예수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나의 약함이다. 내가 약한 만큼 그분이 내 안에서 강하시기 때문이다.”

성 바울로의 이 말씀 또한 같은 내용 아니겠는가? …너를 비우려고 애쓰지 마라. 너의 그 노력이 너를 더욱 강고하게 만든다. 당분간은 꿈속에서 셋째 비구가 망치로 돌을 살짝 건드렸듯이 그렇게만 살아라. 거의 다 왔다. 아멘, 고맙습니다.

-피리를 분다. 숨을 들이쉬는데도 소리가 난다. 이런 엉터리는 없지. 생각으로는 그런데 소리가 나는 걸 어쩔 것인가? 내쉴 때 나는 소리와 들이쉴 때 나는 소리에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다. 내쉬면서 내는 소리는 이런저런 장식이 가능한데 들이쉴 때는 언제나 단음이다. 어떤 꾸밈음도 허용되지 않는다. 음정도 없다.

그런데도 내쉴 때 나는 소리들과 정확하게 어울린다. 오히려 들이쉴 때 나는 소리가 내쉴 때 나는 소리를 생기 있게 해주는 느낌이다. 꿈에서 깨어나는데 한 말씀 들린다. 사람들이 숨을 들이쉬면서 말할 수는 없다. 그건 불가능이다. 하지만 말하는 사이사이로 숨을 들이쉬지 않으면 사람은 한 마디도 할 수가 없다.

어디 말뿐이랴? 사람이 하는 어떤 일도 들이쉬고 내쉬는 숨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말이나 동작은 사람이 조절하거나 꾸밀 수 있지만 숨은 그럴 수 없다.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짓을 하든지 그것을 할 수 있게 하는 무엇을 기억하여라.

…쉼표가 음악을 있게 한다고 말한 게 모차르트였던가? 보이는 무엇을 보면서 그것이 보이게 해주는, 보이지 않는 무엇을 아울러 본다. 주야로 하느님을 묵상한다는 말이 이 말인가?

픽사베이

-밤새 뒤척이다가 찬송을 부르며 새벽잠에서 나온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그 소리 가운데 주 음성 들리니 내 아버지의 큰 뜻을 나 알듯 하도다.

사람들 세상은 온갖 소음으로 시끄럽지만 그것들을 감싸주는 자연은 언제나 고요하다. 사람이 자연을 떠날 수도 벗어날 수도 없음이야말로 더없이 자비로운 하늘 은총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니 괜찮다, 괜찮다. 인간의 용암(熔岩) 같은 분노도, 폭력도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을 끝내 이기지 못하리니.

-그 나라(?)에서는 그가 어디에서 왔느냐, 어디에 속했느냐가 인간의 품위를 결정한다. 이를테면 나무에 속한 사람이 불에 속한 사람보다 위일 수 없고 바람에 속한 사람이 구름에 속한 사람보다 아래일 수 없다.

누가 묻는다, 넌 어디에 속한 누구냐? 답한다, 이 물건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무슨 말이냐? 이 물건은 흙이고 물이고 불이고 바람이고 그리고 하늘이다. 흙이, 물이, 불이, 바람이, 그리고 하늘이 어디에 속한단 말이냐? 대답하다가 스스로 감동하여 헐떡이며 꿈에서 깨어나는데 누가 빙그레 웃는 것 같다.

허, 말은 근사하다만 아직 멀었구나. 흙이, 물이, 불이, 바람이, 그리고 하늘이 어떻게 헐떡거린단 말이냐? 따라서 웃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괜찮다, 괜찮다, 그래봤자 시간문제다. 옴

-“하나인 무(無)를 중심으로 온갖 유(有)들이 돌아간다. 비어있는 바퀴통 하나를 서른 개 바퀴살이 돌듯이.” 이런 내용이 이야기로 펼쳐진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등장하고 휴대용 라디오를 목에 걸고 등산하는 젊은이도 등장하는데 그들의 이야기로 앞의 문장이 어떻게 구성되는 건지, 꿈에서 나오니 전혀 모르겠다.

꿈과 현실의 문턱에서 들은 음성 하나 기억에 남아있다. “하나인 진짜를 무수한 가짜들이 돌고 있다. 네가 너로 알고 있는 그것도 무수한 가짜들 가운데 하나다. 부디 너를 비워 ‘비어있는 바퀴통’으로 되려 하지 마라. 괜한 짓이요, 터무니없는 짓이다. 그저 네가 너를 위해서 할 수 있거나 해야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만 알고 있어라. 그리고 그러니 안심해라.” …뭔지 잘 모르나 좌우지간 아멘이다.

관옥 이현주 목사

*이 시리즈는 순천사랑어린마을공동체 촌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