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곰삭한 맛

<그 담쟁이가 말했다>

맑은옹달샘 2024. 10. 29. 10:14

<그 담쟁이가 말했다>

나는 담쟁이입니다.

기어오르는 것이 나의 일이지요.

나의 목표는 세상에서 가장 길며

튼튼한 담쟁이 줄기를 이루는 것입니다.

옆 벽에도 담쟁이 동무 잎들이

기어오르고 있었지만

내가 더 길고 아름답습니다.

내 잎들은 부챗살 모양입니다.

오늘도 그 사람이 보러 왔습니다.

나는 힘차게 벽을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 사람은 한참 동안이나

나를 바라보다가 벽의 어깨를

한 번 쓰다듬 고는 떠나갔습니다.

나는 부챗살로

벽을 기어 올라갔습니다.

주홍빛 아침 해가

내 꿈밭 위에서 허리를 펼 때까지.

아아,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담쟁이 줄기가 될 때까지.

있는 힘을 다해.

- 강은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