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곰삭한 맛

<맑은 물>

맑은옹달샘 2024. 11. 5. 09:14

<맑은 물>

맑은 물은

있는 그대로를

되비쳐 준다

만상에 꽃이 피는 날

산의 모습은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잎 하나 남지 않고

모조리 산을 등지는

가을 날은

쓸쓸한 모습

그대로를 보여 준다.

푸른 잎들이

다시 돌아오는 날은

돌아오는 모습 그대로

새들이 떠나는 날은

떠나는 모습 그대로

더 화려하지도 않게

구태여 더 미워하지도 않는다

당신도 그런 맑은 물

고이는 날 있었는가

가을 오고 겨울 가는

수많은 밤이 간 뒤

오히려 더욱 맑게 고이는

그대 모습 만나지 않았는가

- 도종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