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2)

용서(2)
"여러분은 서로 너그럽게
따뜻하게 대해 주며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 4,32).
하고 싶지만 잘 안 되고,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쉽게 일어나지 않는 것이 용서이다.
용서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용서는
자기가 늘 용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자만이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용서받지
못할 일을 수없이
저질러 왔음에도
지금 버젓이 살아 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끊임없이 용서를
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늘 눈감아주고 용서해주시는
하느님의 자비 때문에
우리는 지금 살아 있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께서 들려주는
무자비한 종은
자기가 일만 달란트나 되는
빚을 탕감 받은
존재라는 사실은 잊고,
자기에게 겨우 백 데나리온
빚을 진 동료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으며
빚을 갚으라고 닦달을 한다.
종은
방금 자기가 용서받고
풀려난 존재임을 잊고 있다.
왕은
그 종을 다시 붙잡아 들여
감옥에 가두고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이것은 협박이 아니다.
우리는 용서받은 존재,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존재임을
깨우쳐 주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용서를 느낀 자만이
진정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처럼.
용서는 내게 주어진
생명을 선물로 보고,
내게 접근하여 오는 이웃을,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주변 환경을
선물로 볼 때 가능해진다.
주어진 모든 것을
선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데서,
땅이 땅의 대접을,
돈이 돈의 대접을,
인간이 인간의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되고,
진정한 너와 나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는
용서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용서할 수 있는 존재다.
화해할 수 있는 존재다.
우리는 지금
살아 숨쉬고 있기에...
- 마산교구 이제민 에드워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