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의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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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의 성찰>
며칠 전 어느 신문의 '생활 속에서'라는 독자란에서 읽은 이야기인데 …….
"9세 되는 막내아들의 생일잔치에 초대된 한반 아이들이 흥겹게 게 놀다가 서로가 자기의 장래 희망을 밝히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반장을 한다는 아이가 '난 의사가 될거야!"라며 한다는 소리가 '본래 나는 과학자가 꿈이었는데 부모님, 특히 우리 엄마가 의사가 되라면서 책상 위쪽 벽에다 '의사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표어마저 써붙여놓고 이를 조석으로 복창을 시키니 안 될 수도 없다.'는 토로였다.
그리고 그 의사가 된 성공사례로 자기 외삼촌을 들면서 그는 지금 아파트와 병원에다 자가용까지 갖춘 10억대나 되는 부자인데 그게 모두 의사이기 때문에 결혼 때 공짜로 생긴(외삼촌 댁이 혼수로 해가지고 온) 재산이라는 자랑을 덧붙이더라."는 것이다.
물론 이를 기고한 주부는 저러한 아이나 그 어머니의 온당치 못한 성취욕구를 개탄하고 있었으나,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그 이야기의 내용이 극단적이긴 하지만 오늘의 우리 기성세대들의 의식구조를 감안할 때 어쩌면 내남없이 모두 자연스레 저지르고 있는 소행같이 여겨졌다.
즉 남 앞에서는 2세교육의 과열이나 자모들의 치맛바람을 흉보고 욕을 하는 사람도 또 공적인 자리에서는 말로나 글로 오늘의 물질주의와 배금사상화 기능제일주의를 비판하고 힐책하는 사람도 실제 자기네 집에서 자기네 자녀들에게 품고 있고 요구하고 가르치는 것은 자기 아들이 '의사가 되어지고'라는 어머니와 대동소이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과 느낌에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성찰할 때 오늘날 우리 기성세대들이 가정에서 2세들에게 품고 있고 요구하고 가르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 출세와 돈과 명예, 즉 소유의 추구뿐이 아닌가.
그래서 2세들에게 동서 종교가 가르치는 무소유의 행복은커녕 인륜과 인문이 가르치는 바 인의예지(仁義禮智)나 진선미(眞善美) 등 삶의 본질과 보람에 속하는 것들을 깨우쳐주고 갖추어주려는 기성세대는 거의 없다시피 되어 있다.
이것은 당연한 형상으로서 말하자면 기성세대 자신들이 그러한 삶의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필수품들을 지난 시대의 폐물인 양 팽개쳐버리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놓치지 못할 것은 오늘날 우리의 차세대들의 이질적으로 보이고 해괴하게 보이는 행패나 망동도 그들의 독자적 소산이나 우연적 소행이 아니라 기성세대들의 의식 내용이나 그 정신 상태에다 거점을 둔 그것의 연쇄적 반영이나 반응이라는 사실이다.
이 점을 명백히 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오늘의 한국 기성세대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이상이나 가치관 또는 실천하고 있는 생활의 윤리나 규범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를 한번 따져보아야 한다.
우선 내세우자면 민주주의의 달성과 통일의 성취라는 이상과 비원, 그리고 전통적 윤리나 문화적 가치의 계승이라 하겠는데, 정직히 말해서 오늘의 기성사회에 저러한 이상이나 규범이나 가치가 구호나 표어로 존재는 하지만 실제 실천으로서는 거의 부재상태라고 하겠다.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날 한국의 기성세대들에겐 삶에 있어서의 불가결한 꿈이나 지표나 규범이나 가치관은 없고 오직 앞에서 쳐든 2세교육에서 보다시피 물질주의에 침식당한 물리적(출세), 물질적(돈), 정신적(명예) 소유욕만이 남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주 잘라서 말하면 오늘날 한국 기성세대들의 상승(上昇)의 의지란 '남보다 잘사는 것'이 그 전부인 것이다. 저러한 기성세대들의 내면의식을 오늘의 젊은 세대들의 횡포나 망동에다 연결할 때 그 필연성이 너무나 명백해진다. 바로 이것도 어제 읽은 신문기사이지만, 전주의 어느 여고생이 반장선거에서 떨어졌는데 그녀는 경쟁상대였던 당선된 반장 친구를 불러내어 그 얼굴에다 염산 400cc를 끼얹어 중상을 입혔다는 것이다.
내가 그 기사를 읽으면서 머리에 즉시 떠올린 것은 대구 보궐선거때 벌어진 정모 후보 부인의 자살소동이었다. 즉 기성세대들의 삶에 있어서의 근본적 가치의 부재가 저러한 새세대의 흉변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편 저러한 기성세대들은 삶의 본질적 가치나 규범들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으면서도 오직 공허한 형식논리로 자신들을 분칠하고 있다는 사실이 젊은이들에게는 누를 길 없는 반감과 역정을 자아낸다 하겠다. 그래서 그들은 개인적으로는 감성적 차원의 니힐리즘이나 찰나주의적 향락에 빠지고 사회적으로는 아나키즘적 눈먼 저항에 나아간다.
이렇듯 오늘의 모든 사회적 현상은, 특히나 물질주의적 사조나 본능적인 풍조는 새세대만의 독자적 소행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기성세대들의 연쇄작용 속에서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렇게 따져볼 때 기성세대들은 오늘의 젊은이들을 개탄하고 힐난하기에 앞서 자기들 자신의 오늘을 반성하고 뉘우쳐서 인간의 참된 삶을 지탱할 이상과 규범과 가치를 설정하고 그것에 충실해야 젊은 세대들이 그것을 거점으로 긍정적이고 진실된 이상과 건전하고 성실한 삶에 나아간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즈음 들리는 말로는 공무원들의 기강을 쇄신하기 위하여 정신쇄신운동인지를 일으킨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이란 것은 경조사(慶弔事)에 큰 화환 보내지 않기, 호화요정 출입 삼가기 등이다.
이 보도를 읽으면서 나의 감정 그대로의 표현을 한다면 '지금 온 세상이 곪아터져가는데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인가 싶다. 참말로 온 국민의 정신적·윤리적 쇄신이 선풍처럼 일어나지 않으면 이 나라는 '소돔과 고모라'나 수라장이 되는 게 아니냐 하는 끔찍한 생각이 든다. 이때야말로 정부는 경제회복과 그 부양책도 긴급하겠지만 이에 못지않게 인륜과 인문의 지도자들을 모아 국민정신의 쇄신책을 마련해야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 구상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