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 왜 절해유?

행자의 노후, 보림장은 어디인가?

맑은옹달샘 2024. 11. 14. 19:34

행자의 노후, 보림장은 어디인가?

얼마전 필자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나보다 조금 더 연배인 도반이 “스님 내가 갈 곳이 없어”라는 것이다. 작은 토굴의 주지 소임을 놓고 포교현장에서 물러나고 싶은데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이다. 대중처소에 가고 싶은데 나이가 많아 대중에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암 수술을 한 도반은 작은 사가를 마련하고 투병 중이다. 대중처소도 젊은 수행자들을 선호하고 돌봄이 필요한 나이들고 병든 수행자들의 입방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구니 스님들은 오래전부터 공동체를 이루어 수행하는 도량이 여러 곳이 있다.

대부분 염불과 참선수행을 하고 가끔은 텃밭 울력도 할수 있는 수행공동체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수행공동체 또한 급속이 고령화되어 노노케어가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출가자들의 고령화는 세속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지표가 아니어도 아직도 현역에 계신 노스님들을 보면 알수 있다. 노스님들은 인지와 신체에 장애가 오게 되면 마지막을 상좌나 대중에의지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그러나 현실은 요양원에 의탁해야만 한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요양원이나 의료시설에 가기 전까지 물러날 하산처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현역에서 물러나는 것을 불교에서 하산처라고 한다. 오래전부터 선배스님들은 현역에서 물러나 제2의 수행처에서 보림하면서 회향을 했다. 80년대 초중반에 출가한 우리 또래의 스님들은 선배스님들처럼 상좌가 있는 경우가 많지 않고 이미 노후수행기에 접어들었다.

젊은 시절 치열하게 선방에서 참선수행했고, 포교현장에서는 불사와 포교에 전념했다. 이제 몸도 마음도 무상의 배에 올라탄 스님들은 하산처가 필요하다. 하산처는 예전 우리 선배스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노후수행에 보림의 장이 되어야 한다.

승려 노후에 대한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필자가 출가할 때도 수행자의 노후문제로 미래가 불안했고, 심지어 이웃 종교의 노후복지에 대한 부러움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불안은 단적인 예가 될 수도 있겠지만, 사설사암이나 아파트 등 개인적인 수행처 공간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출가자가 승가공동체가 아닌 사저공간에 주거를 하는 것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종단에서는 출가자들의 노후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보니 이런 현상들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종단에서는 이러한 출가자 노후 주거실태조사가 필요하고 출가공동체의 복원을 위한 정책을 실현해야 한다.

최근 조계종단에서는 승려복지회와 전국비구니회 주최로 ‘승려 노후 주거’ 정책토론회를 가졌다고 한다. 속도를 냈어야 하는 복지문제는 이미 늦었지만 다급한 문제로 다가왔다. 주거형태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지금의 승가공동체 거주 형태보다는 이동에 장애가 없는 주거형태의 선호도가 높다.

승려노후 공동체는 돌봄이 필요하지 않은 하산처와 돌봄이 필요한 요양시설 형태의 주거시설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경제적 원조 없이 돌봄이 가능한 시스템도입도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스님들의 노후 돌봄을 재가요양보호사를 활용할 수도 있겠지만, 출가공동체 내에 스님 등을 요양돌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요양보호사교육원 설립도 필요해 보인다.

인도 불교사를 보면 부처님 당시에도 수행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매우 중요시했다. 비를 피할 수 있고, 추위를 피할 수 있고, 해충을 피할 수 있고, 외부로부터 안전이 확보되는 수행처가 필요했고, 이러한 수행처는 많은 독지가의 후원 속에서 수행에 집중할 수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수행처는 그때의 환경을 반영할 수는 없지만, 이동에 장애 없는 시설과 건강권을 보장받고 작은 채전밭이라도 있다면 참선하고 염불할 수 있는 금상첨화의 하산처가 될 것 같다.

원효스님은 발심수행자에 “파거불행(破車不行)이요 노인불수(老人不修)”라 말했다. 도반스님! 물러날 곳을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진원 스님 계룡시종합사회복지관장 suok320@daum.net

[1751호 / 2024년 1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