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묵상 옹달샘-이해인

< 우리 밥, 우리 쌀 >

맑은옹달샘 2024. 11. 15. 09:33

< 우리 밥, 우리 쌀 >

 

'얘, 너 밥 먹었니?'

'엄마, 밥 주세요'

'어서 와서 밥 먹으렴'

하는 우리 말 속에

하얀 밥풀처럼 묻어오는

따뜻한 그리움, 반가움, 정겨움

 

밥은 우리의 생명이요

예술이며 문화인 것을

우리는 설명 없이 압니다.

 

어린 시절부터 밥을 먹으며

꿈과 희망을 키우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온 우리

 

우리의 정성스런 밥상은

세상에 살아 있는 이들끼리

생명을 나누는 축제의 자리이며

저 세상으로 건너간 조상들과의

만남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밥이 없이는 살 수 없고

밥을 짓는 쌀이 없으면

늘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어쩌다 다른 나라에 가게 되면

보고 싶은 가족의 얼굴과 함께

제일 먼저 밥을 그리워하는 우리

 

쌀로 밥을 짓고, 떡을 만들고

숭늉과 술을 만들고, 죽을 끓이며

건강할 때도, 아플 때도

쌀을 주식으로 삼아

결코 쌀이 싫증나거나 물리지 않는

쌀의 백성, 쌀의 겨레

 

너무 작지만 아름다운 나라

우리가 태어난 이 땅에서

쌀을 통해 우리는

한 핏줄임을 확인합니다.

 

우리가 가꾼 농산물을

열심히 먹으며 열심히 살다가

언젠가는 죽어서 묻혀야 할

우리 땅, 어머니 땅...

 

너무 고맙게 가까이 있어서

우리는 당연한 듯

고마움의 표현을 잊고

살았나 봅니다.

 

농부들의 정성어린 땀과 수고도

곧잘 잊고 사는 우리에게

'가끔은 고맙다고 말해야 해' 하며

조용히 일어나 타이르기도 하는

잊을 수 없는 어머니 땅

 

여름엔 초록의 싱싱함으로

가을엔 황금빛 겸허함으로

환히 물결쳐 오는 들판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우리의 그리움,

하나뿐인 고향입니다.

 

오, 쌀이 있어 복된 겨레

쌀이 주는 든든한 기쁨이여, 평화여

 

다른 나라의 쌀로

밥을 지어먹는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우리기에

느닷없이 '쌀 수입' 이야기는

가슴을 찢는 아픔이고

절망의 태풍이 아닐 수 없습니다.

 

농부가 아니라도 우리는

이 슬픔을 감당할 수 없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매일의 잠자리가 편치 않습니다.

 

어떤 정치적인 발언도

어떤 겉도는 말로도

쉽게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이유를 대지 마십시오.

복잡하게 생각하기 힘든

단순한 사람들에겐

변명도 오히려 슬픔의 짐이 됩니다.

 

제발, 하느님 도와주세요.

언제나 마음 놓고

우리 땅에서 우리 밥을 먹는 것,

힘이 들더라도

평화로운 마음과 보람으로

쌀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

이것이 우리가 새해에 거는

소박한 꿈이며 푸른 희망입니다.

 

농촌과 농부에 대한 무관심,

우리 것을 소홀히 한

무절제한 삶의 태도,

깊이 감사할 줄 몰랐던

지난날의 뻔뻔함으로 뉘우치고

우리는 이제

더 많이 사랑하겠습니다.

 

숨어 피는 작은 벼꽃처럼 조용하게

잘 익은 벼이삭처럼 겸허하게

한마음 한뜻을 모아

우리는 이제

더 알뜰하게 지혜로운

새 사람, 새 한국인이 되겠습니다.

 

제발, 하느님 들어주세요.

쌀 나라 백성의

쌀 한 톨 안에 스며있는 단단한 눈물

작지만 큰 기도를 꼭 들어주세요.

 

- 이해인

 

제가 드리는 식사 전 기도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이 음식을 먹을 때마다

농어민의 정성어린 땀방울을 기억하게 하시고

굶주림에 배고파 울부짖는

고통 받는 이들의 아픔을 헤아려

작은 나눔이라도 실천하게 하소서.

 

이 귀한 음식을 먹고

아버지 사랑에 보답하는

감사의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옹달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