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곰삭한 맛

<그래도 미움으로 살지 말거라>

맑은옹달샘 2024. 12. 2. 20:15

<그래도 미움으로 살지 말거라>

어머님 집에서 자고 난 아침

눈을 뜨니 어머니가 이마를 짚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아직도 많이 아프냐아?

고문 독은 평생을 간다더니...

아뇨, 어제 좀 고단해서요

나는 황급히 일어나 상한 몸을 감추며

태연히 얼굴을 씻는다

어머니가 기도를 마친 후 곁에 앉아

가만가만 두런거리신다

이승만 죽고 박정희 죽을 때도 나는 기도했다

전두환 노태우 감옥 갈 때도 나는 기도했다

잊지는 말아라 용서도 말거라

그래도 미움으로 살지 말거라

죽은 내 어머니는 그럤다

사람은, 미움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인생은, 사랑으로 살아내야 한다고

곧고 선한 마음으로 끝내 이겨내야 한다고

-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