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福音 묵상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맑은옹달샘 2025. 6. 20. 17:44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2코린12.1-10.마태6.24-34)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2002년, 사목국에서 처음 강의를 맡았을 때가 생각납니다. 구역장, 반장, 레지오 단원들을 대상으로 짧은 강의를 준비했지만, 막상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준비한 내용은 20분도 되지 않았고, 남은 시간은 진땀을 흘리며 채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강의도 늘고, 여유도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강의를 하면서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배우는 사람보다 가르치는 사람이 더 많이 배운다는 말, 맞는 것 같습니다. 최근 꾸르실료 교육에서 다시금 그런 배움의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후배 신부님의 강의를 들으며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을 떠올렸고, 선배 신부님의 말씀에서는 “형만 한 아우 없다”라는 깊은 연륜의 울림을 느꼈습니다.

후배 신부님은 풍부한 영상 자료를 준비했고, 선배 신부님은 사목 현장에서 길어 올린 체험을 담담하게 풀어주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시편 131편에 관한 묵상이었습니다. “저는 제 영혼을 가다듬고 가라앉혔습니다. 어미 품에 안긴 젖 뗀 아기 같습니다.” 이 구절을 풀어 설명하면서 신부님은 성숙한 신앙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젖을 뗀 아기는 더 이상 엄마의 젖만을 보지 않습니다. 이제는 엄마 그 자체를 바라봅니다. 즉,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께서 주실 어떤 ‘보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분 자체를 사랑하고 따르는 태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인간 성숙의 본질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집착하는 많은 것들 ‘명예, 물질, 성취’ 이 모든 것은 사실 ‘젖’과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그 젖을 주는 ‘하느님’보다, 젖 그 자체에 마음을 빼앗기고 맙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은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주시는 분이 아니라, 존재 자체인 하느님께 집중하는 신앙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성인의 삶은 이런 성숙한 신앙의 전형입니다. 스물세 살의 젊은 나이로, 신학생의 신분으로 로마의 흑사병 환자들을 돌보다 병에 걸려 순교한 성인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헌신을 온몸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세상의 성공이나 영예가 아닌,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자유롭게 자기 자신을 내어놓는 삶, 바로 그 삶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신앙인의 길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유’를 오해합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하느님 앞에서 나 자신을 내어놓을 수 있는 상태, 곧 세상의 욕망에서 벗어나 온전히 그분께 의탁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느님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세상의 노예가 되지만,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단지 물질적 걱정을 넘어서, 삶의 ‘방향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조건보다 하느님의 뜻을 먼저 구하라는 이 말씀은 곧 ‘삶의 중심축’을 바로 잡으라는 초대입니다.

성인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어렵고 버거운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인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매일의 삶 안에서 하느님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할 수 있다는 성 바오로의 고백처럼, 우리의 약함 속에서도 하느님은 일하십니다.

우리 안의 욕망과 두려움을 벗고, 젖 뗀 아기처럼 하느님만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우리는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오늘 하루, 젖을 찾는 아기가 아니라,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기처럼, 무엇을 얻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그 자체를 사랑하기 위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기대에서 벗어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조재형 가브리엘신부 강론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