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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福音 묵상

< 결국 과부의 청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

                                                           성 요사팟주교 순교자 기념일

                                                                (3요한5-8.루카18.1-8)

                                                      < 결국 과부의 청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

어렸을 때, 어머니 심부름으로 시장에 자주 갔었습니다. 반찬 재료와 식료품, 종종 석유 심부름할 때도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사야 할 물건 목록과 돈을 제 손에 꼭 쥐여주고는 잘 다녀올 것을 신신당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난처한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시장 가다가 동네를 찾은 약장수를 보게 된 것입니다. 약장수가 오면 차력 쇼를 비롯한 재미있는 여러 가지 쇼를 보여 주거든요. 저는 심부름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그 쇼를 계속 즐겁게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얘들은 가라.”를 외치며 쫓아내는 약장수에게 밀려나 다시 시장으로 가려고 하는데, 글쎄 손에 있어야 할 돈이 없어진 것입니다.

어머니에게 혼날 것을 생각하니 끔찍했습니다. 집에서 시장까지를 땅바닥만 보면서 왔다 갔다 반복했습니다. 돈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말입니다.

도저히 집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문 앞에서 울고 있는데, 노숙자(당시에는 거지라고 했습니다)로 보이는 사람이 저를 보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너, 나랑 같이 살래?”

집에 들어갈 용기가 없어서 이 사람을 쫓아갈까도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때 어머니께서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손에 끌려 집에 들어갔습니다.

울면서 돈을 잃어버렸다고 말하자 당연히 혼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만약 어머니가 무섭다고 노숙자 손을 잡고 가출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두려움을 피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해결은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비로소 가능했습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의 이런 모습을 원하십니다. 고통과 시련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그냥 피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지금 해야 할 것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 매달리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올바른 판단을 내리시어 구원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다만 그때까지 좌절하지 말고 끈기 있게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로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를 말씀해주십니다. 불의한 재판관을 성가시게 졸라대서 결국 과부의 청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데, 하물며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의 청을 외면하겠냐는 것입니다.

고통과 시련의 문제 앞에서 우리는 늘 의문을 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 불평불만도 많이 표현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피하려고만 했지, 정면으로 고통과 시련을 마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매달리지 못하고 늘 피하는 데 급급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매달릴 수 있는 주님이 계신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커다란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니, 어렵고 힘든 시간을 현명하게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요?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남의 험담을 하면, 곧 당신의 험담이 돌아오는 줄 알아라(헤시오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