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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사회교리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매번 새해를 맞이하면 되새기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사목헌장 1항입니다.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 참으로 인간적인 것은 무엇이든 신자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는 것이 없다. 그리스도 제자들의 공동체가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교회의 사람이지만 세상 속에 살아감을 잊지 말아야 된다는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희망을 찾고 기쁨을 느껴야 될 우리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얼마 전 교구에 사제 부제 서품식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사제가 네 분 탄생했고 신학생 두 분이 부제품을 받았습니다. 갈수록 서품을 받는 신학생들이 줄어드는 것이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사람, 교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기꺼이 선택한 후배들의 마음 역시 느낄 수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특별히 교구 사제단이 사제 서품 후보자에게 한 명 한 명 안수해 주는 예식은 교구 사제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함께 이 길을 걸어가자는 의미 역시 녹아 있지요. 

서품식이 지나고 얼마 후, 새 신부님 두 분이 제가 있는 본당에 미사를 봉헌하러 오셨습니다. 서품 후 첫 임지 부임까지 채 1주일의 시간도 없는데 선배의 부탁에 기꺼이 본당에 와 주었습니다. 그리고 강론 시간 때 각자 자신의 서품 모토와 앞으로의 각오를 이야기했습니다. 요즘 사회에서 잘 들을 수 없는 희망의 이야기, 기쁨의 이야기였지요.

"하느님의 약속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 모든 인간을 위하여 마련되어 있는 새롭고 영원한 집, 정의가 깃든 새 땅에 대한 확고한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희망은 현세의 삶에 필요한 활동에 대한 관심을 약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강화시켜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56항)

(이미지 출처 = Pixabay)

강론을 들으면서 문득 저의 첫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저도 서품을 받고 초대받는 그 미사의 자리에서 저 이야기를 했었지요. 희망을 이야기하고 기쁨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의 모습은 많이 변해 있습니다. 희망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지적을 하는 것이 늘어나고 기쁨을 생각하기보다는 비판을 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언젠가 제 입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거 해서 뭐하노?" 이렇게 쉽게 포기하고 싶은 유혹들이 커져 나갑니다. 저뿐만 아니라 교회도 그러하고 사회 역시 그렇게 흘러갑니다. 지적과 비판이 늘어가고 격려와 칭찬이 실종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위 세대는 아래 세대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는 지적이, 아래 세대는 위 세대에게 ‘뭘 아냐고’ 하는 비판이 판치는 세상입니다.

갈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쌓여 가는 이 세상에서 사제인 나는 좀 달라야 한다고 마음먹지만 저 역시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사회 안에서 이러한 유혹을 쉽사리 뿌리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사회 분야에 대한 투신에 더욱 큰 힘을 쏟게 한다. “지상 낙원”은 결코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 특히 평신도들은 “가정과 사회의 일상 생활에서 복음의 힘이 빛나게” 행동하도록 촉구 받는다. 모든 사람이 그러한 투신 뒤에 감추어진 종교적 동기를 공유하지는 못하지만, 그러한 동기에서 비롯되는 도덕적 확신은 그리스도인들과 선의의 모든 사람 사이의 만남의 장이 된다"

("간추린 사회교리" 579항)라는 교회의 가르침에 주목해 봅니다. 희망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과 노력에서 태어남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분명 작년보다 쉽지 않을 올해일 텝니다. 그렇지만 서로에 대한 질책과 비판보다는 그 속에 녹아 있는 작은 희망을 보고 서로 격려해 주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 나라의 정치와 경제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좀 잘 해 주면 더 좋겠지요.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우리 각자가 가진 희망과 기쁨을 잘 찾고 지켜내는 그러한 날들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유상우 신부 부산교구 우정 성당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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