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어 사는 고독 >
외출했다
돌아온 나의 빈방에,
흰 무명옷을 빨아 입은
정갈한 모습.
말없이 날
기다리는 고운 눈매의 너,
손짓하지 않아도
밤낮 내 방을 지키며
깨어 사는 손님인가
천장에도, 벽에도,
문에도 숨어 있다
가슴으로 파고드네.
죽고나면 또 어느 누가
이 나무침대 위에 쉬게 될까.
지금은 내가
이 자리에 누어 너를 만난다.
들을수록 정다운
카랑카랑한 목소리 뽑아
네가 노래를 하면 나의 방은
신기한 바닷속 궁전이 된다.
지느러미 하늘대는
한 마리 물고기처럼
나는 짜디짠 밤의 물을 마신다.
- 이해인 <내 혼에 불을 놓아>에서
'깊은 묵상 옹달샘-이해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이해인 (0) | 2023.02.27 |
---|---|
이해인 수녀 “안아만 주기에도 인생이 너무 모자라요” (0) | 2023.02.15 |
< 동백꽃과 함께 > (0) | 2023.02.04 |
< 시인 윤동주를 기리며 > (0) | 2023.01.25 |
오늘을 위한 기도-이해인 (0) | 2023.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