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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

바람, 학 울음까지 그대로 적을 수 있는 유일한 글자는?…훈민정음 이야기

바람, 학 울음까지 그대로 적을 수 있는 유일한 글자는?…훈민정음 이야기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상.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우리는 훈민정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나라에 국보가 수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 가장 귀한 것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무엇일까? 아무래도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이 아닐까. 온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세종대왕은 여러 면에서 성왕(聖王)의 면모를 보였지만, 수많은 업적 가운데 으뜸은 단연 훈민정음 창제일 것이다. 

필자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또 독자가 이것을 읽을 수 있는 것도 다 세종대왕 덕분이 아닌가. ‘글 모르는 백성이 제 생각을 펼쳐 낼 수 있도록’ 28자를 만들었다는 ‘어제(御製)’ 서문 내용처럼, 훈민정음의 창제로 인하여 그 이전에는 소수만이 누리던 문자 생활 특권을 많은 사람들이, 특히 여성들이 보편적 생활문화로 누릴 수 있게 되었음을 생각해 보면 감탄을 넘어 숙연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국립한글박물관.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조선왕조실록에서 집자한 훈민정음 ‘어제’ 서문. 출처 <이정호전집>

한국인이라면 초등학교 시절부터 훈민정음에 대해 이런저런 내용을 배우고 들으며 성장한다. 가장 흔하게 접하는 내용이 훈민정음은 발음기관의 모양과 일치하는 과학적인 문자이며, 천지인 삼재의 원리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국내 업체가 생산하는 휴대전화에서 천지인 삼재(• ㅡ ㅣ)를 응용한 문자입력법이 많이 이용되고 있으니, 오늘날에도 훈민정음에 담긴 천지인 삼재의 원리는 나름대로 활용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정도일 뿐이다. 우리는 훈민정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에 견줘 훈민정음에 대해 그리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데 음성학 내지 음운학이 기초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훈민정음은 15세기 당시의 최첨단 철학이론이 집약적으로 응축된 산물이기도 하다.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는 성리학의 인극(人極) 사상과 주역의 철학이 그것이다. 글자의 모양이 발음기관의 모양과 일치함도 알고 보면 구체적 모양(象)에 자연의 이치를 담아낸다는 주역의 원리에 따른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조선에서는 훈민정음을 ‘음악 아닌 음악’으로 보아 <동국문헌비고> 의 ‘악고(樂考)’ 부분에 붙여두었다. 현대의 우리가 알기는 어렵지만 훈민정음에는 궁상각치우의 오음, 12율려, 청탁고저의 소리 변화를 담고 있어서 음악을 짓는 이치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사성(四聲)의 고저장단이 살아있었으므로 더욱 음악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리고 음운학이든 철학이든 음악학이든 그 바탕에는 자연의 보편 질서인 음양오행의 원리와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는 천지인 삼재 사상이 관통하고 있다. 또한 전서(篆書)를 본뜬 훈민정음의 서체 역시 캘리그래피(calligraphy)의 측면에서 연구해 볼 만하다. 그러니 훈민정음은 여러 방면에서 접근이 가능한, 또 여러 측면에서 종합이 되었을 때 그 모습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는 하나의 종합예술적 성격을 지닌 작품과 같다.

 해례본의 서글픈 역사

‘훈민정음’이 어떠한 원리에 따라 지어졌는지 알려주는 문헌이 집현전 학사들이 펴낸 ‘훈민정음해례’이다. ‘해례(解例)’란 글자 그대로 ‘풀이와 보기’라는 말이다. <해례본>에는 새로운 글자를 왜 만들었는지, 어떻게 읽는지, 어떤 원리를 담고 있는지 어떻게 사용하는지 등 훈민정음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 이렇게 귀중한 책이 고이 전승되어왔어야 마땅하건만 수백년간 자취를 감추었다가 1940년대 안동의 민가에서 극적으로 한 권이 발견되었다. 

더군다나 앞의 두 장은 없어지고 뒤집어 묶여 이면지로 사용된 상태로 발견되었으니 “하마터면!” 하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이제는 그 값어치를 환산할 수 없는 ‘귀한 몸’이 되었지만, 이면지로 쓰여 글씨 연습을 한 먹물이 그득히 배어 나오는 <해례본>을 보노라면 천대받던 언문의 서글픔이 깊숙이 서려 있다. 당시 <해례본>을 매입한 간송 전형필 선생이, 소유주가 기와집 한 채 값인 천원을 부르자, 되려 1만원을 주고 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근래 상주본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해례본>이 출현했다고 하나, 불에 그슬리는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그 소재와 보존 상태를 확인할 수도 없으니 이래저래 <해례본>의 수난사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러니 현재로서는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간송본 <해례본>이 유일한 국보라 하겠다. 이 <해례본>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훈민정음을 둘러싼 여러 가지 억측들은 해 뜨자 별 지듯 그 빛을 잃게 되었다. 왜냐하면 <해례본>에서는 훈민정음이 어떤 원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글자지은 풀이(制字解)’를 통해 소상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 자연의 소리를 그려낸 자연의 글자

‘천지자연의 소리(聲)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문채(文)가 있는 법이니, 옛사람이 소리를 따라 글자를 만들어서 그것으로 만물의 뜻을 통하며 그것으로 천지인 삼재의 이치를 실었다.(…) 간단하고도 요령이 있으며, 정밀하고도 잘 통한다. 그러므로 슬기 있는 이는 아침을 마치기 전에 깨칠 것이요,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넉넉히 배울 것이다.(…) 쓰는 데마다 갖추지 않음이 없고, 가는 데마다 통하지 않음이 없다. 비록 바람 소리와 학(鶴) 소리와 닭의 울음과 개 짖는 소리라도 잘 적을 수 있다.’(<정인지 서문> 중에서) <정인지 서문>은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정인지가 작성한 <훈민정음> 해례의 서문을 말한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의 뜻을 풀어보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다. 그런데 글자를 지어놓고 왜 ‘소리(音)’라고 하였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이에 대해 의문을 품어보았을 법하다. 이 의문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정인지 서문’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정인지(1396~1478)는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문채(文)가 있어서, 소리에 따라 글자(字)를 지어서 그 문채를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를 책에서 밝혔다. 

문(文)은 통상 ‘문채’ ‘무늬’라 풀어쓰는데, 꾸밈이나 아름다운 모양 및 양식을 뜻한다. 천문(天文), 지문(地文), 인문(人文) 등으로 표기된 ‘문’이 그런 뜻이다. 해, 달, 별이 하늘의 무늬이며, 산, 바다, 강, 짐승, 물고기, 초목 등은 땅의 무늬이다. 인문, 즉 사람의 무늬는 무엇일까?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문화, 예술, 종교, 철학 및 그것이 추구하는 가치가 그에 포함되겠다. 문명, 문화, 문양의 문(文)이 모두 이 뜻이다.

갑골문과 금문의 ‘문’. 출처 위키백과

빗소리, 바람 소리, 파도 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聲)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며, 그것을 일정한 틀에 담아내었을 때 시가 되고 음악이 된다. 정인지의 말은 훈민정음 글자의 모양과 운용법에는 자연의 소리에 따른 천·지·인의 무늬가 담겨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자연의 이치를 담고 있으니 간단하면서도 정밀하여 사람의 소리뿐 아니라 자연의 소리도 잘 적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새로운 글을 ‘문자’라 하지 않고 굳이 ‘음(音)’이라고 한 데에서 시각과 청각을 아우르는 종합예술적 의미를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그러면 천문, 지문, 인문을 관통하는 자연의 보편 질서가 어떻게 훈민정음의 글자로 구현된 것일까?

 이 세상의 물건 중에 음양오행을 벗어나는 것은 없다

하늘과 땅의 이치는 하나의 음양과 오행뿐이다. 곤괘(坤卦䷁)와 복괘(復卦䷗) 사이가 태극(太極)이 되고 움직이고 고요한 후에 음양이 된다. 무릇 생명을 가진 무리로서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이 음양을 두고 어디로 가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의 목소리도 다 음양의 이치가 있는 것인데, 도리어 사람이 살피지 못할 뿐이다. 이제 정음(正音) 지으신 것도 애초에 꾀로 일삼고 힘으로 찾아낸 것이 아니라 다만 그 목소리에 따라 그 이치를 다하였을 뿐이다.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니니 어찌 천지자연의 질서와 그 쓰임이 같지 않겠는가! 정음 28자도 각각 그 형상을 본떠서 만들었다.(<글자지은 풀이>)

위의 글은 <훈민정음해례>에 수록된 ‘글자지은 풀이’의 첫머리이다. <해례본>의 지은이들은 이 몇 줄을 통해 훈민정음의 원리가 무엇인지 그 핵심을 요령 있게 설명한다. ‘글자지은 풀이’는 먼저 이 우주를 포괄하는 보편 원리가 음양과 오행이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음양오행이라는 보편 법칙의 지배 하에 있다는 이야기이다. 

사람의 목소리도 이 세계 내의 물건이니, 거기에도 음양과 오행의 법칙이 있음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그래서 훈민정음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목소리에 깃든 음양과 오행의 이치를 찾아내 그것을 글자로 형상화해 내었지, 인위적인 꾀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자연의 이치는 둘이 아닐 터이니 두루 통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훈민정음은 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글자에 담아냈다는 말이다. 훈민정음에는 보편법칙이라는 음양과 오행이 어떤 모습으로 들어있는 것일까?

 훈민정음의 비원(祕苑)으로 안내하는 주역의 길

<훈민정음해례>에는 ‘자연의 이치가 그대로 글자가 되었다’는 말 한마디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그 비밀스러운 정원이 궁금하다면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볼 일이다. 그런데 그 문을 열기 위해서는 ‘주역’이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과 틀을 먼저 알아두어야 한다. 목소리에 깃든 음양오행의 이치를 글자로 담아내는 과정을 보다 실감 나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 과정은 필요불가결하다.

‘주역’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모양과 숫자, 즉 상수(象數)로 해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문학(義理)적 관점에서 이치를 탐구하는 것이다. 다소 돌아가는 듯하지만 상수(象數)가 무엇이고 의리(義理)가 무엇인지 낯가림은 좀 면해보도록 하자.

상(象)은 ‘모양’이란 뜻이다. 영어로는 통상 이미지(image)로 번역한다. 예를 들어 ‘주역’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인 8개의 괘 가운데 곤괘(坤卦☷)는 가운데가 탁 트여 뻗어 나가는 대지의 모양이고, 간괘(艮卦☶)는 그렇게 땅을 가다가 턱 걸리는 산 모양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간괘는 ‘산’을 상징하며 이로부터 멈춤, 그침, 고요함 등의 뜻이 파생되어 나온다. 이런 식으로 건괘(乾卦☰)는 항구 불변한 자연운행의 꿋꿋함을, 감괘(坎卦☵)는 도랑 속에 푹 빠져 옴짝달싹 못하는 위험함을 나타낸다. 

이와 같이 ‘주역’에서의 상(象)이란 이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특성을 살피고 그것을 이미지화하여 압축 파일과 같이 괘의 모양에 담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 유배 시절 주역 공부에 몰두한 나머지 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주역의 괘모양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상수(象數)에서의 수(數)는 간단히 말해 ‘하루는 24시간이고, 사람은 280일 만에 태어난다’와 같은 식으로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주역에서의 의리(義理)는 ‘정의롭다’는 말이 아니라 ‘의미’와 ‘이치’를 뜻한다. 말하자면 인문학적 관점에서 주역의 상(象)과 텍스트에 접근하는 것이다. 훈민정음으로 예를 들어보면 상(象)은 직립한 사람의 형상을 본떠 ‘ㅣ’를 그리는 방식이고, 의리(義理)적 관점이란 직립한 인간인 ‘ㅣ’에 대해서 “머리는 하늘에, 발은 땅에 버티고 서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존재, 하늘과 땅의 화육작용을 돕고 완수하는 존재”라는 해석을 덧붙이는 식이다. ‘ㅣ’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사실 상수와 의리는 서로 보완적이어서, 상수 있는 곳에 의리가 있고, 의리가 있는 곳에 상수가 있다.

훈민정음은 글자의 모양(象)에 인문학적 의미(義理)를 담고 있고, 얼른 보이지는 않지만 오행의 방위와 숫자도 그 안에 들어있다. 다음 회차에 상세히 다루겠지만 초성 17자는 발성 기관의 구조 및 오행에 따라 동・서・남・북・중앙의 다섯 방위로 나뉘고, 중성 11자 역시 다섯 방위와 숫자를 지니고 있다. 초성의 기본자인 ㄱㄴㅁㅅㅇ 가 발성 기관의 모양을 그대로 본떴다는 과학성도 실은 ‘자연의 이치를 형상화했다’는 상수학적 발상인 것이다.

또 역(易)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는데, 불역(不易)·변역(變易)·이간(易簡)이다. 불역은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니 불변의 보편적 원리를 뜻한다. 원리는 변하지 않는 중심을 제공하지만, 이루 다 셀 수 없는 현상으로 변화무쌍하게 전개될 수 있으니 그것이 ‘변역’이다. 그런데 그 방식은 쉽고 간단하다는 것이 ‘이간’이다. 훈민정음은 이러한 역(易)의 세 가지 뜻을 다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28개의 자모로 세상의 거의 모든 소리를 그려낼 수 있으니 간단하면서도 변화가 무궁하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이 음양을 두고 어디로 가랴?” “바람 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 다 적을 수 있다”고 한 <해례본> 저자의 자신감은 이유가 있는 일이다.

이와 같이 훈민정음은 주역의 핵심 원리가 집약적으로 망라되어 창조적으로 구현된 작품이다. 우리는 ‘글자지은 풀이’의 초성과 중성, 그리고 초・중・종성의 운용법에 대한 설명을 통해 그 구체적 내용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연재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훈민정음 이야기 중 첫 번째입니다.

글 이선경(조선대 초빙객원교수・한국주역학회 차기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