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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며 목 축일 샘-法頂

< 법정 스님의 소개를 간략하게 >

< 법정 스님의 소개를 간략하게 >

지난해 이승을 떠남으로서 더 유명해진 법정스님의 글이 여러곳에서 소개 되였는데 최근 본인이 법정스님의 글을 대하고 보니 법정스님의 소개를 간략하게 나마 여기에 하는 것이 어떨까 해서 몇자 적어 봅니다.

법정스님은 우리와 동년배 같은 1932년 생으로 나보다는 2살위요 C 박사와는 동갑이시니 감히 동년배라고 불러도 큰 죄는 아닐껏 같은 친근감을 느끼는 말로 해본 소리입니다.

그는 대학 재학중이던 1955년에 통영 미래사에 입산하여 1956년 내가 의과대학 본과1학년으로 진학시에 송광사라는 절의 효봉스님의 문하에 입문 출가하여 스님이 되였으며, 그이후 통도사, 봉은사 를 위시한 전국의 사찰과 산사를 두루

돌며 외롭게 면벽참선과 불교 수련을 하였으며, 1975년에 송광사 뒷산에 불일당을 짓고 수행의 자리로 삼았다 합니다.

그의 스승이며 선사인 효봉스님은 속명이 이찬형으로 (1988~1966) 일제강점기의 한인 최초의 판사로 1923년 평양 복심법원(지금의 고등법원)판사로 재직하다 독립운동가들을 사형선고한 때문에 고민하다 양심을 옥죄는 번뇌로 이세상은 내가 살곳이 아니다 라고 하며 판사직과 가족을 버리고 3년간이나 엿판을 메고 전국을 떠돌다가 1925년 금강산 유점사를 찾아 석두스님을 맞나 사미계를 받고 스님이 되였다고 한다.

효봉스님의 일화중 하나로 그가 입적하는 날인 1966년10월 15일 새벽 " 나 오늘 갈란다" 라고 하시곤 훌젹 이승을 떠나 입적하셨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법정스님은 평소에 그의 소신대로 무소유로 전국을 떠돌며 사람과 사람의 벽을 허물고 종교간의 벽도 하물며 자연을 사랑함으로서 인간과 자연이 상호 같이 호흡하며 하나로 살아가야 한다고 하는 소신으로 환경보호운동에 앞장 섰으며 한국불교의 현실을 한탄하고 불교개혁을 외치며 오늘의 불교사찰이나 교회는 외형만 키우고 물질승배의 경향이 앞서 입으로만 나무아미타불을 외우고 몸소 행하지 않으니 일반대중들로 부터 돌팔매질을 받아 마땅하다고 하며 가난하고 맑은 삶을 실천하고 깨우치며 솔선 실천하자고 제창하였다.

또 법정스님이 봉은사에 게실때에

운허스님과 함께 불교경전을 우리말로 번역하셨으며,불자는 마땅히 지혜에 눈뜨고 중생을 건지기 위한 것인즉 종교는 연민의 정을 갖이고 사회부조리를 지적하는 사회참여 의식이 요청된다고 하였다.그런 활동의 일환으로 법정스님은 김재준, 조항록 목사 및 함석헌, 장준하, 김동길등과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하여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인혁당 사건이후 현실사회에 환멸을 느껴 다시금(1975년)수행의 자리로 돌아가 수행에 정진 하였다.

종교인이란 타종교를 비방하거나 반대하지말고 서로 이해하고 혈력하며 모든 종교의 근본목적인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이해인 수녀와 김수환 추기경, 및 장익 주교 등과 교분을 쌓고 명동성당에서 각론도 하였으며, 그가 이룩한 길상사에서 김수한 추기경을 초대하여 함께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길상사란 우리가 잘알고 가본일도 있는 저 유명한 대원각이다. 대원각은 우리들이 잘 알다시피 1930년대의천재 시인 백석의 연인이였던 김영한씨가 요정으로 운영하다가 나중에 일반 대중음식점으로 되여 우리들도 가끔 갔었던 삼청동 뒷길의 언덕에 있는 삼청각 옆의 그 음식점이다. 이 음식점(대원각)을 김영한 씨가 법정스님께 시주하여 길상사 라는 절로 개축하여 1997년12월14일에 창건된 절이다.

법정스님은 ""우리가 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라고 했으며 또 다른 글 "버리고 떠나기" 에서는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있는가 모두가 한때일뿐 ,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가 이룬 업적은 불교경전 번역 이외에도 팔만대장경 우리말 번역에도 동참하여 역사를 주도 하셨다. 그 경우의 일화도 하나 소개하면 법정스님이 해인사에 게실때에 어느 보살이 스님더러 팔만대장경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질문하드라고 한다 그래서 방금 들여 나오신 곳에 보고 오신것이 팔만재장경 이라고 하니 그보살이 말하기를 아 그 빨래판 같은거가 팔만 대장경이냐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귀하고 소중한 내용이 있는 팔만 대장경이라도 읽고 이해할 수 없으면 빨패판에 불과 하구나 하고 생각 끝에 이를 번역하게 되였다는

후담이 있다.

법정스님의 가르침 중 무소유 이외에도 일기일회 라는 말을 자주 역설하셨는데 이는 기회란 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생에 단 한번 맞나는 인년이라는 말이다.

기회란 한번 노치면 다시 돌이키기 어렵다. 이 시대 이 땅에서 우리가 맞난것은 미워하고 싸우기 위함이 아니라 고통과 기쁨과 사랑을 함께 나누기 위해 찾아서 맞난 이웃이요 겨래이니 사람은 이렇게 서로 돕고 사랑함으로서 진정한 인간이 된다고 하셨다.

또한 그는 오늘날의 지구는 죽어가고 있다 .지구가 죽으면 인간도 죽는다.인간은 우주가운데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우주의 하나인 지구, 지구의 하나인 자연의 한부분이다. 모든 생물은 다 상호 협력하며 지구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고로 자연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것은 곧 자멸을 뜻하니 흐르는 강물과 산을 자연 그대로 잘 보존하며 동식물도 잘 보호하여 다 함께 살아가도록 하여야 한다하며, 자연 보호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앞장 서셨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애도 속에 2010년 3월 11일 그가 이룩한 길상사에서 입적 하셨다. 그는 살아 생전 보다 오히려 입적후 세상에 그의 글과 함께 더 널리 알여졌다.

우리가 이미 들어서 잘아는 무소유란 먼져번 글(107) 에서 말한대로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니 많은 부나 물욕을 멀리하고 살기에 필요한 최소한도의 가난한 맑음을 택하면 부보다 훨씬 값지고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그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며 말보다 실천이 얼마나 힘든것 인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 법정 스님- 사랑 나눔 그 낮은자리-꾸밈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