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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묵상 옹달샘-이해인

< 듣게 하소서 >

< 듣게 하소서 >

주여, 저로 하여금

이웃의 말과 행동을

잘 듣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제 하루의 작은 여정에서

제가 만나는 이의 말과 행동을

건성으로 들어 치우거나

귀찮아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가로막는 일이 없게 하소서

이웃을 잘 듣는 것이

곧 사랑하는 길임을

제가 성숙하는 길임을 알게 하소서

이기심의 포로가 되어

제가 듣고 싶은 말만 적당히 듣고

돌아서면 이내 잊어버리는 무심함에서

저를 구해주소서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못들은 척 귀 막아 버리고

그러면서도 '시간이 없으니까'

'잘 몰랐으니까' 하며 핑계를 둘러대는

적당한 편리주의, 얄미운 합리주의를

견책하여 주소서

주여, 저로 하여금

주어진 상황과 사건을

잘 듣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앉아야 할 자리에 앉고

서야 할 자리에 서고

울어야 할 때에 웃고

웃어야 할 때에 웃을 수 있는

민감하게 듣고 순응하는

삶의 지혜를 듣게 하소서

주여, 저로 하여금

자신을 잘 듣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저를 잘 듣는 사람만이

남을 잘 들을 수 있음을

당신을 잘 들을 수 있음을

거듭 깨우치게 하소서

선한 것을 지향하는 마음의 소리를

잘 듣기 위해

침묵과 고독 속에

자신을 조용히 숨길 줄도 알게 하소서

저는 두 귀를 가졌지만

형편없는 귀머거리임을 몰랐습니다.

사람과 사물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말만 많이 했음을 용서하소서

들으려는 노력도 아니하면서

당신과 이웃과 세상에 대해

멋대로 의심하고 불평했음을

지금은 뉘우칩니다.

매일 매일의 제 작은 여정에서

제 생애의 큰 여정에서

잘 듣고 잘 말하는 이가 되도록

밝고 큰 귀와 입을 갖고 싶습니다.

언제나 이웃을 위해

마음의 귀가 크게 열려 있는

성인들의 사랑을 본받고 싶습니다.

말소리만 커지는 현대의 소음과

언어의 공해 속에서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겸손히 듣고 또 듣는

들어서 지혜를 깨치는

삶의 구도자 되게 하소서.

-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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