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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길동무 얘기

오염되고 뜨거워지며 쓸쓸해지는 바다

오염되고 뜨거워지며 쓸쓸해지는 바다

인천 앞바다에 흔히 ‘우럭’이라고 말하는 조피볼락은 아직 많다. 파도 낮고 물때 맞을 때 먼바다로 가면 아이스박스를 채울 수 있지만, 우럭은 예외일 따름이다. 화력발전소에 마련한 양식장을 비롯해 여러 양식장에서 양식한 치어를 열심히 방류하기 때문이다. 그 외 해산물은 대부분 크게 줄었다.

1960년대, 웬만한 집은 인천 앞바다에서 잡은 작은 갈치를 토막 내 듬성듬성 김장에 넣거나 밴댕이 몸통을 깍두기에 넣었건만, 이제 사치다. 강화 해안에서 작은 트럭 뒤집힐 정도로 잡던 밴댕이도 수입한다. 그물에 올라오면 “재수 없다!”라며 텀벙텀벙 던져 “물텀벙이”였던 아귀도 낙지와 더불어 자취를 감췄고 흔하던 가무락과 동죽도 옛이야기가 되었다. 갯벌 매립과 해안 개발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변고가 닥칠지 모른다. 기후변화로 수온이 상승하고, 일본 후쿠시마의 핵 오염수가 들이닥친 것이므로.

동죽, 바지락, 가무락, 백합, 소라, 낙지, 참게뿐 아니라 바닷물이 들어오면 망둥이, 밴댕이, 우럭, 노래미, 숭어, 광어, 조기를 잡았던 인천 갯벌은 거듭된 매립으로 손바닥? 아니 손가락보다 작게 남았다. 인천만이 아니다. “세계 5대 갯벌” 중 으뜸이라 자랑했지만 지금 초라하기 짝이 없다. 국토 65퍼센트가 경사 깊은 산악이고 농토에 비해 인구가 많아도 서해안에 너른 갯벌이 있기에 풍요로웠지만, 옛이야기가 되었다. 대신 수입 식량이 넘친다.

육지에서 쏟아내는 온갖 영양염류를 정화하는 갯벌은 온실가스를 가장 효과적으로 제거해 왔다. 개흙 1그램에 10억 마리 이상 존재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탄소 동화작용을 하고 수많은 조개의 탄산칼슘 껍질이 이산화탄소를 붙잡았지만, 공항, 공업 단지, 신도시로 변한 요즘은 온실가스를 펑펑 쏟아낼 따름이다. 갯벌에 치명적인 발전소는 수온 상승의 주요 원인이다. 해수온 상승이 현저한 동북아시아에 화력과 핵발전소가 세계 최고로 밀집돼 있다.

발전용 터빈 돌린 수증기는 식혀야 터빈을 다시 돌릴 수 있는데, 식힐 때 ‘온배수’라고 말하는 바닷물을 사용한다. 온배수의 양은 막대해, 터빈 하나에서 초당 대략 50톤 이상이다. 그중 극히 일부를 치어 양식에 사용할 뿐이다. 핵발전소 온배수는 화력의 두 배에 달한다. 방사능이 포함될 수 있으니 핵발전소 온배수는 양식에 사용하지 않지만, 우리는 무모하다. 수온을 높이는 온배수는 해수면 상승을 촉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해양생태계를 위기에 빠뜨린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원고 쓰는 오늘은 일본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가 폭발한 지 12년 되는 날이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10년 이상 모은 핵오염수를 4월부터 태평양으로 버리겠다고 막무가내다. 방사성 수소 이외의 물질을 모두 걸러냈다지만, 믿기 어렵다. 자국 어부를 비롯해 걱정하는 국가의 환경단체와 어부의 검증을 거치지 않았을 뿐이 아니다.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힌 우럭에서 일본이 제시한 안전 기준치를 대여섯 배 초과하는 방사능이 검출되었다.

기준치 이하로 희석해 조금씩 버린다지만, 안전할 수 없다. 반감기, 다시 말해, 방사능이 반으로 줄어드는 기간이 수소는 13년이다. 수소는 물의 구성 성분이므로, 방사성 수소는 방류하자마자 태평양 생물 몸의 일부가 되고, 먹이사슬을 타며 농축될 것이다. 전문가는 반감기가 10차례 지나야 안전, 20차례 지나야 안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준치와 관계없이, 태평양으로 빠져나간 방사성 수소는 100년 이상 농축돼 우리 밥상에 오를 수 있다. 우리 어장은 후쿠시마 해역에서 멀지 않다. 독일의 한 연구소는 1년이면 오염될 거로 전망했다.

일본은 단지 비용을 줄이려고 태평양으로 핵오염수를 버린다. 사고를 일으킨 당사국인 만큼 자국 내 영토에 영구적으로 저장할 윤리적 책임이 있다. 제시된 방법이 없지 않았다. 완벽하게 안전하지 않고 비용이 상당하더라도 책임 이행이 마땅하지만, 양심을 버리려 한다. 앞으로 태평양의 해산물을 먹는 사람뿐 아니라, 해양생태계의 모든 생물은 생명이 단축되거나 멸종될 부담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안전하게 관리하더라도 위험한 핵발전소는 사고를 가정하면 상상 이상으로 위험천만한데, 일본, 중국, 우리나라 해안에 100기 가까운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세계 최고 속도로 늘어나는 중국은 어느새 우리의 두 배를 넘겼는데, 우리는 전혀 검증되지 않은 소형 핵발전소(SMR)까지 추가하겠다고 벼른다. 어느 하나라도 후쿠시마처럼 폭발하면 동북아시아 해안은 즉각 버림받을 게 틀림없다. 방사성 물질이 내려앉아 농축될 갯벌은 독극물 단지가 되고 물고기와 조개도 절대 먹으면 안 될 텐데, 우리는 이 시간, 얼마나 안전하게 관리할까?

식량의 절반 이상을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기후위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삼면이 바다이므로 해산물이 식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한 우리나라는 바다의 풍요로움에 내일을 맡겨야 한다. 우리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되었다. 오염되고 뜨거워지면서 더욱 쓸쓸해질 바다를 바라보자니, 미래세대가 걱정이다.

박병상 60플러스 기후행동, 상임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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