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품는 사람입니까?
“당신은 노예입니까? 노예가 아닙니까?”
페루로 이민을 간 지인이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라고 했다. 거기 사람들은 우리나라와 비할 바 없이 오랜 세월을 식민지하에서 살아왔기에 자연스레 사람을 나누는 기준을 노예냐, 노예가 아니냐로 결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맥락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은 품는 사람입니까, 품는 사람이 아닙니까?”
알을 품는 암탉들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알을 품는다는 건 무엇일까? 알을 품지 않거나 못 품는 건 왜 그럴까? 암탉만 알을 품을 수 있는 걸까? 어쩌면 수탉도 함께 품는 것이 아닐까? 병아리가 언제 알을 깨고 나올까 노심초사하며 기다리는 가운데 정말 별별 생각, 이상한 질문들을 다 해 보았다. 암탉 두 마리가 알을 품은 지 두어 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병아리 소리는 들려오지 않기에. 왜 아직도 병아리가 깨고 나오지 않는 걸까?

다랑이 품은 바다처럼 넓어라. ⓒ정청라
일단 암탉에겐 문제가 없다. 우리 집 닭장에는 ‘알 품기 중독’인가 싶게 알을 잘 품는 암탉이 있기 때문이다. 그 암탉은 날씨가 조금만 따숩다 싶으면 항아리 방에 쏙 들어가 고행이라 할 수 있는 포란(抱卵)에 돌입한다. 지난 겨울, 이상 기후로 날이 봄날처럼 따뜻했을 때도 알 품을 때가 틀림없다는 듯이 알을 품어서 항아리를 엎어서 그 암탉을 억지로 쫓아내야 했다. 아무리 쫓아내도 틈틈이 품기를 멈추지 않아서 나를 달걀 불안증 환자로 만들 정도였다.(멋모르고 요리를 위해 달걀을 깨다가, 거기에서 뭉텅 쏟아져 나오는 덜 된 병아리를 마주쳐야 했기에. 정말이지 달걀을 깨뜨릴 때마다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는지!)
그 암탉은 입춘 무렵이 되자 망설임 없이 곧장 항아리 방을 차지하고 앉았고, 그로부터 한 달쯤 뒤엔 다른 암탉도 합류하여 함께 품기 시작했다. 자기 몸단장 같은 건 꿈도 못 꾸는지 몹시 꾀죄죄한 모습으로.(해서 어쩌다 알 품는 닭들이 모이 먹으러 밖으로 나와 다른 암탉들과 한데 섞여 있더라도 누가 품는 닭인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하얀 깃털이 회색빛 먼지투성이로 변해 있다면 그게 바로 품는 닭!)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는 수탉들이다. 지금 우리 집 닭장에는 수탉이 세 마리가(나!) 있는데 어린 수탉 두 마리가 양아치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며 닭장 분위기를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 지난 가을에 태어나 이제는 장닭이 되어 버린 그 녀석들. 우두머리 수탉(‘백봉 금강’이라 불린다. 벼슬이 금강산 일만이천 봉이나 되는 듯이 웅장하다며 다울이가 그런 이름을 붙였다)은 너무 점잖고 지나치게 너그러워서 그 녀석들의 만행에 적극 개입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상황 속에서 벼슬도 형편없이 못생긴 두 녀석이 암탉들을 못살게 굴면서 허구한 날 닭장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야, 이 나쁜 놈들아!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거냐? 조만간 너희 목숨은 끝장인 줄 알아라. 털을 몽창 뽑아서 잡아먹어 버릴 테니까. 다랑아, 저 녀석들 좀 혼내 줘.”
다랑이가 닭장에 들어가 있을 때 나는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친다. 그 녀석들은 눈치도 없는지 사람이 가까이 있을 때에도 막무가내로 굴기 때문이다. 암탉이 먹는 모이를 가로채질 않나, 물그릇을 확 엎어버리질 않나, 매섭게 달려들어 암탉을 쪼아대질 않나.... 과연 못된 수탉들이 판을 치고 다니는 흉흉한 닭장 분위기 속에서 암탉들이 어찌 마음 편히 알을 품을 수 있겠는가.

고양이 가족은 서로 품어주기 선수들. ⓒ정청라
그 꼴을 보는데 문득 점점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비춰졌다. 생명을 품어서 세상에 낳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자연스런 본성일진데, 낳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낳을 수가 없다고 해야 더 맞는 말이 아닐까? 출산률이 저조한 가장 큰 이유를 경제 부담이라고들 하는데 과연 그런지 나는 의심스럽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분위기일 것이다. 한 생명을, 더 근본적으로는 생명을 품고 있는 이를 품어줄 수 있는 환대와 배려의 분위기 말이다.
(수탉이 알을 직접 품을 일은 없겠지만 알 품는 일에 깊이 관여되어 있는 것처럼, 아이를 낳는 주체가 아니더라도 주체를 둘러싼 여러 관계들이 주체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본다.) 그런 맥락에서 품는 사람이 많아질 때, 너도나도 품고 품어 주는 다정한 분위기 속에서라야, 우리는 새 생명과 조우하는 기적을 더 많이 만나게 되지 않을까?
아, 일단 나부터가 품는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좁은 품을 조금이라도 더 넓혀야 할 텐데 갈 길이 멀다. ‘당신은 품는 사람입니까?’ 하는 존재적 질문을 끈덕지게 품고 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정청라
흙먼지만 풀풀 날리는 무관심, 무 호기심의 삭막한 땅을
관심과 호기심의 정원으로 바꿔 보려 합니다.
아이들과 동물들의 은덕에 기대어서 말이죠.
무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명랑한 어른으로 자라나고 싶어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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