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디언에게 배운다...겸손과 나눔 ‘조용한 가르침’ >
◆ 사진설명 :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세상만물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지구는 하나의 생명체라고 생각했다. 생명은 받았다가 언젠가 돌려줘야 하는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철저한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다. 사진은 인디언 부족중 하나인 ‘검은발’ 추장이 말을 탄채 보우강을 굽어보고 있는 모습
‘뉴에이지’(New Age)라는 단어가 시대의 코드가 됐던 70~80년대. 미국의 젊은이들은 물질문명에서 벗어나 삶과 세계를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생각하는 인디언들의 삶의 방식에 주목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인디언들의 지혜는 이후 전개되는 세계적인 환경운동과 자연·생태주의 운동에 그대로 이어졌다.
한국에서도 최근 인디언 관련 책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그동안은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시팅불’ 같은 인디언 수난사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지난해부터는 ‘구르는 천둥’ ‘지혜는 어떻게 오는가’ ‘우르릉 천둥이 말한다’ 등 인디언들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책과 인디언 연구가인 철학자 서정록씨가 인터넷 ‘다음카페’에 연재한 글 등을 통해 인디언들의 지혜를 살펴본다.
필요한 만큼만 사냥
▲ 대지는 나의 어머니= 인디언들은 이 세상 모든 존재와 생명을 신성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동물을 잡더라도 꼭 필요한 만큼만 사냥하고 그 뼈는 모아 혼령이 다시 환생할 수 있도록 빌어준다. 동물을 인간과 함께 당당한 지구의 일원으로 생각한다.
라코타의 위대한 추장 ‘두발로 선 곰’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자연 속에서 배우는 것 뿐이며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다”고 말했다. 인간의 마음이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면 완고해지며,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잃으면 자연 속에 살아있는 것들 또한 인간에 대한 존경심을 잃게 된다고 믿는다.
대지는 모든 존재의 어머니다. 대지는 그들의 삶의 근거이자 나서 돌아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지는 태양빛을 저장하여 초목을 자라게 하고 육지의 모든 생명체에 휴식처를 제공한다. 시애틀 추장은 말한다. “당신들은 쟁기로 땅을 파라고 한다. 어찌 어머니의 가슴을 칼로 찌를 수 있는가.” 자연은 어머니며 여신이며, 대지 위 초목과 동물은 형제요 친척이다.
▲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모든 동식물은 생태적으로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인디언들에게 세상의 만물은 원의 형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티비(천막)를 배열할 때도 반드시 7개씩 한 단위로 해서 원으로 배치하며, 무엇이든 순환적인 원의 형태로 배열한다. 세상의 만물은 ‘원 안의 원’의 형태로 서로 이어져 있고 각자가 서로를 품고 있다. 생명은 받았다가 언젠가는 돌려줘야 하는 신의 선물과 같은 것이다. 인생은 축복이며, 배움이며, 선물이다.
신성한 침묵과 명상= 인디언들은 매일 아침 일어나 제일 먼저 새로 뜨는 해를 맞이하고 새로 밝아오는 대지에 인사한다. 그것은 세계의 위대한 침묵과 마주하는 것이다. 침묵이야 말로 그들이 추구하는 신성함을 만나는 가장 근원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 침묵은 육체와 마음의 절대적인 균형이다.
물질은 축적대상 아니다
그들은 몸과 마음의 정화를 위해 침묵에 든다. 침묵의 목소리는 정성을 다해 귀 기울일 때만 들리는 우주의 언어다. 인디언들은 종종 ‘환상 탐구(Vision Quest)’라는 방식을 통해 절대 침묵 속에서 자연, 그리고 ‘위대한 신령’과 깊은 대화를 나눈다. 그것은 어려운 시험이며,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는 과정이며,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이다. 그 대가로 그는 자신이 갈망했던 축복을 얻는다.
▲ 무소유의 삶= 인디언들에게는 애초부터 소유의식이 없었다. 아메리카대륙에 등장한 백인들에게 그들은 모든 것을 나누어줬다. 북아메리카엔 원래 옥수수 외에 이렇다 할 재배작물이 없었다. 사슴 버팔로 여우 늑대가 있었을 뿐,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조차 거의 없었다.
세상 만물은 서로 연결
곡물과 가축은 백인들이 가져온 것이다. 인디언들은 컬럼부스가 미국에 올 때까지 수많은 세월을 채집과 수렵에 주로 의존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절제하는 생활을 터득했으며, 어려운 가운데 나눔의 미덕을 키웠다. 인디언들은 물질을 축적의 도구가 아닌 선물과 나눔의 대상으로 여긴다. 인디언들의 전통 중 하나인 ‘포틀래치(potlach) 문화’는 남에게 얼마나 많은 선물을 했느냐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계급·신분이 결정되는 풍습으로, 호혜적인 선물문화를 가리킨다.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이를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라고 불렀다.
承仁培기자 jane@chosun.com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
"어머니인 大地를 어떻게 사고 팔수 있나
생명의 거미집을 짜는건 사람이 아니다"
인디언들의 자연관은 저 유명한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연설문은 1854년 피어스 미 대통령이 인디언 부족들에게 그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팔라고 강제한 데 대한 답변이다. 한 편의 서정시 같은 연설문을 요약한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들은 총을 들고와 빼앗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늘을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대지의 온기를 사고판단 말인가? 신선한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단 말인가? 소유하지 않은 것들을 어떻게 저들에게 팔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 또한 우리의 일부분이다. 들꽃은 우리의 누이고 사슴 말과 얼룩독수리는 우리의 형제다. 바위투성이의 산꼭대기, 강의 물결과 초원의 꽃들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이 모든 것은 하나이며 모두 한 가족이다. 시내와 강에 흐르는 반짝이는 물은 우리 조상들의 피다. 백인들은 어머니 대지와 그의 형제들을 사고 훔치고 파는 물건과 똑같이 다룬다. 그들의 끝없는 욕심은 대지를 다 먹어치우는 것도 모자라 끝내 황량한 사막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인디언들은 수면 위를 빠르게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한낮의 소낙비에 씻긴 바람의 향기와 바람이 실어오는 잣나무 향기를 사랑한다. 나의 할아버지에게 첫 숨을 베풀어준 바람은 그의 마지막 숨도 받아줄 것이다. 바람은 아이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생명의 거미집을 짜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그 안의 한가닥 거미줄에 불과하다. 생명의 거미집에 가하는 행동은 반드시 그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한 부족이 가면 다른 부족이 오고, 한 국가가 일어나면 다른 국가가 물러간다. 사람들도 파도처럼 왔다 가는 것이다. 언젠가 당신들 또한 우리가 한 형제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출처: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원문보기 글쓴이: 정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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