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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者의 지팡이

교황, 우크라 대통령과 회동… ‘평화사절단’ 파견할까

  • 교황, 우크라 대통령과 회동… ‘평화사절단’ 파견할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13일 유럽을 순방 중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아래는 2019년 7월 4일 바티칸에서 이뤄진 교황과 푸틴 대통령 회동 모습. OSV

프란치스코 교황이 13일 바티칸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났다. 약 40분간의 비공개 회동 직후 바티칸 공보실은 “두 지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인도주의적,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짤막하게 밝혔다.

이날 만남은 교황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진행 중인 미션이 있다”고 밝힌 지 보름 만에 성사된 것이다. 교황은 지난 4월 30일 헝가리 사도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길에 “현재 진행 중인 미션이 있지만, 공적인 것은 아니기에 공적으로 진행되면 (추후) 설명하겠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도 10일 로마 라테라노대학교에서 “새로운 진전이 있다”고 말했지만 자세한 언급은 피했다. 그러면서 “평화 임무가 진전될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바티칸이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미션’에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부는 바티칸이 ‘진행 중인 임무’에 대해 모른다고 부인했다. 그러자 파롤린 추기경은 “양측 모두 통보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바티칸 외교가에서는 평화 임무가 휴전 중재를 위한 평화사절단 파견일 것이라는 추측이 힘을 얻고 있다. “오늘날 휴전을 위한 조건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 이니셔티브(휴전 논의)가 있다면 바티칸도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는 파롤린 추기경 발언의 행간을 읽은 전망이다. 평화 회복의 첫 단계는 우선 양측이 무기를 내려놓는 것이기에 이 전망은 나름의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바티칸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최대한 균형을 유지하려는 이유는 두 나라 사이에 ‘대화의 다리’를 놓고 싶기 때문이다.

교황은 연설, 강론, 인터뷰 등을 통해 120여 차례나 전쟁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인도주의적 참상을 규탄했지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난하는 발언은 최대한 자제했다. 오히려 서방 시각에서 보면 러시아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한 적도 있다.

“(어느 국가 수반이 저를 찾아와 말하길) 러시아는 제국이고 국경 문제를 첨예하게 여기는 것을 모른 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문 앞에서 계속 시끄럽게 짖어대서 매우 걱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다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두렵다고 했는데, 실제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분쟁의 원인을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제국주의가 충돌한 것으로 봅니다.”(2022년 9월 15일 예수회 러시아 지구 회원들과의 대화)

교황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2020년에 이어 이번까지 두 번 만났다. 위로와 연민을 전하는 전화 통화도 여러 번 했다. 또 교황청 애덕봉사부를 통해 긴급 구호물품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교황의 대화 제의에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교황과 푸틴 대통령은 그동안 세 차례(2013년, 2015년, 2019년)나 직접 만난 인연이 있지만, 전쟁 발발 이후 소통이 중단된 상태다.

두 나라가 바티칸의 평화사절단을 반길 지는 불투명하다. 두 나라는 당장 전쟁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우크라이나는 휴전을 말하기 전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고 싶어한다. 그 목표를 위해 대규모 군사 공격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도 점령한 영토를 내줄 용의가 없어 보인다. 또 휴전 제의에 먼저 응하면 우크라이나와 서방 세계에 약점을 노출하는 것이기에 평화사절단 파견에 동의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그럼에도 교황은 전쟁 중단과 평화 회복을 위한 대화를 간곡하게 호소하고 있다.

“전쟁이 해결책이 아니라 파멸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합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에 깃든 인류애의 이름으로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합니다. 무기를 내려놓고, 무력이 아닌 합의를 도모하고, 공정하고 안정적인 해결책으로 이어질 수 있는 협상 조건을 모색합시다.“(2022년 10월 2일 주일 삼종기도 훈화)

교황은 두 나라를 휴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는 미션을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한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