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 제7주간 화요일
(사도20.17-27.요한17.1-11ㄴ)
<아버지,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2022년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열여덟 살이라는 최연소 나이로 1위에 해당하는 금메달과 두 개의 특별상(청중상, 신작 최고 연주상)을 수상한 임윤찬 피아니스트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지도교수인 손민수 교수를 향해 ‘위대한 선생님’, ‘손민수 선생님은 종교다’라는 말로써, 스승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보였습니다. 스승을 통해 자기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았고, 이로써 인생의 목적과 방향성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승이신 손민수 교수 또한 제자를 향해 ‘존경하는 피아니스트’라는 찬사를 보낸 것입니다. 자신 역시 제자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면서 이런 말을 했던 것입니다.
스승과 제자. 한쪽만 의미를 상대에게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 있는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결과 더 높은 가치가 이 안에서 흘러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나에게 의미를 주는 사람만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나 자신이 먼저 상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된다면 어떨까요? 나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나에게도 의미를 전달해주기도 하고, 그 의미가 세상 전체로 그 가치가 펼쳐질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범을 따라야 한다면서 “나를 따라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의 모범을 받아 우리 역시 사랑의 모범을 따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미 우리에게 온 하느님 나라가 조금씩 완성되는 길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시고 영광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아버지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인 이들이 아버지께 보호받도록 청하십니다. 그러나 말씀을 거부하는 세상을 위해서는 기도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사람만을 위해 기도하신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일까요? 우리도 그분의 영광을 들어 높일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 의미를 받은 제1독서에 나오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사도 20,24)
사도 바오로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주님께서 보여 주신 의미 있는 모범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는 파괴될 수 있어도 패배할 수 없다(어니스트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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