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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길동무 얘기

다시 힘을 내 세상을 바꿀 때

다시 힘을 내 세상을 바꿀 때

오랜 시간을 국가권력에 맞서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이 보장된 세상을 만들자고 동분서주하며 살아왔습니다. 민중들이 힘을 모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독재의 그늘을 겨우 빠져나온 인고의 세월이었습니다. 수많은 열사들의 죽음으로, 민중들의 피와 땀으로 얻어진 민주주의와 인간의 기본적 권리가 그나마 보장되는 세상이 왔다고 안도하기도 했습니다.

문정현 신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기대하며 지금까지 현장을 지키고 있지만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고, 노동자들의 기본적 권리를 짓밟는 오늘의 모습에 군사독재의 시대로 회귀하는 것 같아 지나온 세월이 허망하기도 합니다.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네요.”

지난 5월1일 세계 노동절에 분신한 양회동 열사의 유서 중 일부입니다. 윤석열 정권이 ‘건폭’ 운운하며 노동조합을 폭력집단으로 매도할 때 속초에서 건설노조 간부로 일하던 양회동 열사 또한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양회동 열사는 노동조합을 폭력조직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운 자신을 공갈협박범으로 몰아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스스로 분신했습니다. 양회동 열사가 얼마나 괴롭고 참담한 심정이었을지 상상조차 어렵습니다. 이 죽음을 앞에 두고도 여전히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자들을 폭력집단으로 매도하고 검찰과 경찰은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 전국에서 열리는 시국미사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양회동 열사의 형을 만났습니다. 양회동 열사의 형은 동생을 잃은 비통함에 눈물을 흘릴 겨를도 없이 ‘분신방관’과 ‘유서대필’ 운운하는 언론의 행태에 깊은 상처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형은 동생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거리에 나섰습니다. 슬픔을 참아가며 싸워나가는 이 가족의 옆에 함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는 19일은 건설노조 양회동 열사가 정권의 폭력에 저항하며 목숨을 던진 지 49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책임자 그 누구도 이 죽음에 어떠한 반성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건설노조를 동료의 죽음을 이용하는 집단으로 매도하고 시민들과 함께 조문하려던 분향소도 폭력적으로 철거했습니다.

“이판사판 공사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사판이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있다고 건설노동자들 스스로 자조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만큼 위험도, 불안도 큰 건설현장에서 안전한 일터를 만들고 하청에 또 하청을 만들어 이윤 부풀리기에만 혈안이 된 거대 건설사에 맞서 싸운 건설노조를 어찌 폭력집단으로 매도할 수 있겠습니까.

국가와 거대 기업은 점점 부자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불평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목숨을 던져야 하는 이 비참한 시대에 우리 모두 양회동 열사 옆에서 함께 투쟁해야 합니다. 저는 박정희 유신독재 시대를 거쳐 오늘까지 단 한순간도 투쟁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엄혹했지만 변화에 대한 기대를 붙들고 살아온 시간입니다.

비록 시대가 거꾸로 되돌아가는 것 같더라도 지금까지 그랬듯 민중들이 힘을 모아 싸우지 않으면 결코 그 무엇도 지킬 수도, 바꿀 수도 없을 것입니다. 실망스럽고 미래가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의 힘을 모아 함께 투쟁합시다. 오는 17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진행될 양회동 열사 범시민 추모제에 함께해주십시오.

양회동 열사건설노조노동조합폭력조직

-경향신문 기고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