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체 후 기도>
사제와 교우들은 성체를 모시고 나서
잠깐 속으로 기도를 바칩니다.
이때 필요하다면 회중 전체가 시편이나
다른 찬양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백성의 기도를 완결하고
영성체 예식을 모두 마치기 위하여”,
또 “방금 거행한 신비가
좋은 결실을 가져오도록”
사제는 영성체 후 기도를 바칩니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89항).
합당하게 성체를 모시기 위하여
단계별 준비를 지나왔듯이,
영성체 후에도 침묵, 찬양,
기도의 단계를 거치며
우리가 받은 천상 선물에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사의 마음과
더불어 성체를 받아 모신
우리가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청하는 내용도
영성체 후 기도에 담겨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대 레오 교황의 말씀을 인용하여 가르치듯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어 받는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받아 모시는
그것으로 우리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교회 헌장, 26항).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했을 때
이미 시작된 우리의 변화 과정이 탄력을 받아,
그 지나간 자리에
또 다른 변화를 불러일으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우리가 받아 모시면,
이제 우리 자신이 변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곧 그분의 살과 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빵을 나누어 먹습니다.
이는 우리 자신이
하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하여 흠숭은 결합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더 이상 단순히 우리 앞에
전혀 다른 분으로 서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 안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역동적 힘이 우리 안에 들어오고
또 온 세상을 채울 때까지 다른 이들을 향하여
퍼져 나갑니다.
그렇게 하여 하느님의 사랑은
참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2005년 8월 21일 제20차 세계청년대회 강론)
영성체를 하면서 우리는 영혼의 눈으로,
성찬례가 우리를 위하여 열어 준
새 하늘과 새 땅을 어렴풋이나마 봅니다.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그곳에서는
성찬례 안에서 맛보는 평화와 일치,
사랑과 우애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광경을
직접 보게 될 것입니다.
아니, 그 안에서 살 것입니다.
그러나 그전까지는
변화된 말과 행동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새로운 미래를
현재에 접목시키고, 우리가 되어야 할 존재를
부분적으로나마 미리 살아가도록 부름받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신 우리는
우리의 나약한 의지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기운을 얻고 성령의 힘으로 격려를 받아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미래로 사람들이
마음을 열게 되도록 영성체 후 기도를 통해
또다시 간청하는 것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이 모든 과정을
“존재의 핵심에서 일어나는 핵융합”에
비유하시며, 오직 “악을 이기는
선의 내밀한 폭발만이
점진적으로 세상을 바꿀 일련의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일으키시는
‘선의 폭발력’을 의식하며,
영성체 후 기도를 바치는 동안
우리 삶과 주변에 있는 모든 불일치의 씨앗을
그리스도의 몸의 일치시키는 힘으로
몰아낼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2021년 9월 26일 연중 제26주일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가톨릭제주 3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서귀복자본당)]
출처:가톨릭사랑방 catholicsb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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