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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묵상 옹달샘-이해인

< 순례자의 기도 >

위령 성월

< 순례자의 기도 >

저무는 11월에

한 장 낙엽이 바람에 업혀 가듯

그렇게 조용히 떠나가게 하소서

그 이름 사랑이신 주님

사랑하는 이에게도

더러는 잊혀지는 시간을

서러워하지 않는 마음을 주소서

길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가 손님일 뿐

아무도 내 최후의 행방을 묻는

주인 될 수 없음을

알아듣게 하소서

그 이름 빛이신 주님

한 점 흰구름 하늘에 실려 가듯

그렇게 조용히

당신을 향해 흘러가게 하소서

죽은 이를 땅에 묻고 와서도

노래할 수 있는 계절

차가운 두 손으로

촛불을 켜게 하소서

해 저문 가을 들녘에

말없이 누워 있는 볏단처럼

죽어서야 다시 사는

영원의 의미를 깨우치게 하소서

- 이해인 <사계절의 기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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