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아름다움>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여름철 그 무더위도 처서를
고비로 한풀 꺾여 가을에 밀려간다.
순환의 법칙, 이 우주 질서가 지속되는 한 지구는 살아 숨쉰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그 때가 있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하늘이 높아지고 물이 맑아져 차 맛도 새롭다.
어제 아침 가을에 어울리는 다기로 바꾸었다.
지난 해제날 보원요의 지헌(知軒) 님이 새로 빚어 가져온 찻잔에
초가을의 향기를 음미하면서 모처럼 산중의 맑은 한적을 누렸다.
아무리 뛰어난 예술 작품도 작가는 그 작품에 절반의 혼 밖에
불어넣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나머지 절반의 혼은 소장자,
즉 그 작품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잘 활용하는
사람에 의해서 완성된다.
때깔이 고운 이 찻잔은 보원요 나름의 기법으로
최근에 빚어진 것인데 찻잔의 크기도 알맞고, 잡음새도 좋고,
전도 원만하고, 굽도 넉넉해서 보고 매만지기만 해도 즐겁다.
이 찻잔은 앞으로 내 눈길과 손결에 의해서 세월과 함께
완벽한 그릇으로 형성되어 갈 것이다.
요즘 <계로록 戒老錄>
1, 노년에 경계해야 할 일들을 읽고 있는데 나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글이다.
돌이켜보니 나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 같은 말을
되풀이해 왔다.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는 것은 지나간 시간의
늪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또한 노쇠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현상은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과 탐구의 노력이
결여되었다는 그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신의 꿈과 이상을 저버릴 때 늙는다.
세월은 우리 얼굴에 주름살을 남기지만 우리가 일에 대한
흥미를 잃을 때는 영혼이 주름지게 된다.
그 누구를 물을 것 없이 탐구하는 노력을 쉬게 되면 인생이 녹슨다.
명심하고 명심할 일이다.
흔히들 노후에 대한 불안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아직 오지 않고 있는
이다음 일이지 지금 당장의 일은 아니다.
세상물정 모르는 철없는 소리일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을
자신의 분수에 맞게 제대로 살고 있다면 노후에 대한 불안 같은 것에
주눅 들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은 과거도 미래도 없는 순수한 시간이다.
언제 어디서나 지금 이 순간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해 보니 내가 이 세상을 의지해 살아오는 동안
알게 모르게 이 지구의 자원을 많이 소비하고
그만큼 지구환경을 오염시킨 것 같다.
오늘과 같은 두려운 기후 변화는 지구 환경을 허물고 교란시켜 온
우리들 자신의 소행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구인들 각자가 삶의 현장에서
될 수 있는 한 이 지구를 오염시키는 일을 삼가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간소하고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
꼭 그렇게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 더미에 짓눌려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 살림살이를 시시로 점검하고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한 해가 다 지나도록 손대지 않고 쓰지 않는 물건이 쌓여 있다면 그것은
내게 소용없는 것들이 아낌없이 새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부자란 집이나 물건을 남보다 많이 차지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갖지 않고 마음이 물건에 얽매이지 않아 홀가분하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자라 할 수 있다.
한밤중 잠에서 깨어나 별빛처럼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그날그날 삶의
자취를 낱낱이 살피고,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고
세상의 눈으로 자신을 비춰 보는, 이런 일들을 통해 노년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다.
노년의 아름다움이란 모든 일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남에게 양보할 수 있는 너그러움에 있음을 잊지 말 일이다.
1. <계로록>
<좋은 사람을 끊으니 기쁘더라>로
일약 베스트셀러의 작가 반열에 오른 일본 여류
소설가 소노 아야코의 늙어 감을 경계하는 글.
멋지게 늙어가는 방법으로
1) 늘 인생의 결재를 해 둘 것
2) 푸념하지 말 것
3) 젊음을 시기하지 말고 진짜 삶을 누릴 것
4) 남이 주는 것, 해 주는 것에 대한 기대를 버럴 것
5)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 것
6) 지나간 이야기는 정도껏 할 것
7) 홀로 서고 혼자서 즐기는 습관을 기를 것
8) 몸이 힘들어지면 가족에 기대지 말고 직업적으로 도와줄
사람을 택할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 법정 스님『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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