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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사회교리

“일상에서의 순교 ‘칠극’에 담겨 있답니다”

  • “일상에서의 순교 ‘칠극’에 담겨 있답니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 김귀분 수녀는 칠극은 귀한 질그릇 속에 담긴 보물”이라며 사순 시기에 칠극을 읽어볼 것을 권했다. 백영민 기자

“저 진짜 까칠하고 못됐거든요. 제가 ‘칠극’을 공부하고 알리면서 많이 변했어요. 수도자이지만 나약한 인간이기에 관계 안에서 소소한 갈등과 마찰로 감정 소모가 많을 때가 있어요.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름으로 판단하기 때문이지요. 칠극은 영성적으로 다름을 수용하도록 돕는 질그릇 속에 담긴 보물이에요.”

‘수원교구 칠극 수녀’로 알려진 김귀분(리나,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 수녀는 이런 이야기를 환하게 웃으며 한다. “제 안에 있는 교만과 질투로 너무 힘들었거든요. 제가 내면에서는 질투와 교만을 표시 안 나게 잘 포장하더라고요. 그렇지만 그것이 없는 게 아니지요.

하느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강의 중에 더러 저의 인간적 약점을 이야기하면 창피하지만, 듣는 신자들은 웃으면서도 더러 울더라고요. 가정과 일터에서 다툼과 갈등이 있을 때 해결 방법을 찾으시기도 하고요.”

사순 시기를 맞아 김 수녀를 만나 우리 마음 안에 자리한 병을 다루는 법과, 오늘날 칠극을 통해 일상 속 순교로 사는 방법을 들었다.

「칠극(七克)」은 18세기 후반 조선에 천주학이 들어오기까지 당대 지식인들의 사랑을 받은 천주교 수양서. 17세기 초, 스페인 출신의 예수회 판토하(1571∼1618, 중국명 방적아) 신부가 쓴 책이다. 판토하 신부는 인간이 저지르기 쉬운 일곱 가지 마음의 병과 이에 대한 처방을 부정적인 면이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에서 제시했다.

△교만- 겸손으로 교만을 누르다 △질투- 용서로 질투를 가라앉히다 △탐욕- 베풂으로 탐욕을 풀다 △분노- 참음으로 분노를 없애다 △탐식- 절제로 탐식을 막다 △간음- 정결한 마음, 음란함을 막다 △나태- 근면으로 나태를 막다가 핵심 내용이다.

“교만과 질투, 탐욕은 한데 묶여 있어요. 탐식과 간음, 나태가 서로 맞물려 있고요. 교만ㆍ질투ㆍ탐욕이 해결되지 못하면 ‘분노’로 가고, 탐식ㆍ간음ㆍ나태가 해결되지 못하면 이 또한 ‘분노’로 갑니다. 여기서 분노가 나 자신을 향하면 우울과 자살이 되고, 타인으로 향하면 폭력, 전쟁, 테러로 가는 것이지요.

초등학교 2학년 때 혼자 성당에 찾아가 세례를 받은 김 수녀는 1983년 수도원에 입회했다.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역사철학을 전공했다. 천안복자여자중고등학교에서 11년간 역사 교사를 지냈고, 지금은 한국순교자영성센터에서 교회사와 순교영성연구 양성자 교육을 하고 있다.

“칠극을 처음 접한 것은 1983년 입회해 김옥희 수녀님의 교회사 수업을 받으면서였어요. 제가 역사를 좋아하지만, 그 당시 순교 영성, 교회사 쪽을 공부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 했어요. 순교, 죽는 건 싫었거든요.(웃음)”

그가 처음 칠극과 인연을 맺은 건 2002년, 몸이 좋지 않아 휴양하던 중 교회사에 열정적인 수녀가 샤를르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를 건네며 일독을 권하면서부터. 이를 계기로 한국 천주교회사와 순교자들의 영성에 눈을 떴다.

“몸도 아프고, 읽기도 싫어서 성의 없이 볼펜 끝으로 책장을 넘기는데, 글자가 살아 움직이는 거예요. 너무 재밌어서 옥편에서 한자를 찾아가며 읽었지요.”

그 후, 본회 한국순교자영성센터 센터장으로 순교 영성 대중화에 열정적인 김청란 수녀의 피정지도를 돕기 위해 맡은 강의가 ‘칠극’이었다. 김 수녀는 강의하면서 칠극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칠극을 주제로 피정 강의도 시작했고, 10여 년 전부터는 수녀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칠극 공부를 했다.

이후 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에서 진행하는 3년 과정의 ‘순교영성강학’에서 칠극 강좌를 맡고 본당과 수도회 등 교회 기관에서 대림 및 사순 특강, 견진교리 특강을 하고 있다.

“우리가 칠극을 공부하는 이유는 내면의 악습을 알아보고 버리기 위함입니다. 또한 역발상으로 내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지요. 우리의 마지막 목적은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김 수녀는 “오늘날 순교 역시 죽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을 증명하는 거룩한 행위”라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현대인의 순교 영성은 일상 안에서 감사ㆍ비움ㆍ나눔을 함께 살아내는 데 있다.

“우선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 성덕의 기본인 겸손과 사랑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예외 없이 하느님의 모상대로 태어났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할 때, 타인도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일상에서의 순교는 깨어있어야 실천할 수 있다”고 했다. 미운 사람을 향해 미소를 지어주고, 길거리의 작은 휴지를 줍는 행위조차 일상의 순교가 될 수 있다. 하기 싫지만, 하느님 때문에 웃어주고, 하느님 때문에 휴지를 줍는 것이다.

순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누리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에게 행복은 일상에서 주어지는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십자가 밑에 숨은 고통이 따라오는 기쁨이다. 김 수녀는 파스카의 영성을 일상 안에서 살아낼 때 그것이 순교임을 거듭 강조했다.

“칠극을 공부할 때에는 늘 변화와 새로움을 추구해야 합니다.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탈피하는 것이 중요해요.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는 누군가가 오늘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내일은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내면의 탄력성을 갖는 것입니다. 배려와 수용으로 타인을 포용하는 것이야말로 일상 안의 순교입니다.”

김 수녀는 “예전에는 ‘사순’하면 어두웠지만, 칠극을 공부하고 회개와 죄 때문에 하느님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돌아서는 기쁨, 복된 죄로 하느님을 기쁘게 만날 수 있게 됐다”고 털어놨다.

“신앙인들의 궁극적인 목적인 영원한 생명과 행복은 하느님을 마음껏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순 시기는 특별히 더 그렇습니다.”

김 수녀는 “칠극의 가르침대로 자기 비움과 포기, 주님 뜻을 채움으로 하느님을 기쁘게 사랑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한계를 안고 담대하게 살아내는 것, 주님께 의탁하며 하느님의 자녀로 전화위복의 희망과 십자가 아래 담긴 파스카 영성을 살아내는 사순 시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