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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福音 묵상

사순 제3주간 화요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다니3.25.34-43.마태18.21-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어느 자매님께서 젊었을 때, 남동생이 사고로 하늘 나라에 가버려서 어린 조카들을 맡아 키웠다고 합니다. 남의 자식을 함부로 대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고, 또 너무나도 사랑하는 남동생이기에 조카에게 자기 자식들보다도 더 먼저 챙겨주는 등 신경을 써서 키웠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녀들이 “우리가 의붓자식이야?”라며 어릴 적에 불만을 많이 표시했었다고 합니다.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그래도 하나뿐인 남동생의 아들을 잘 키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조카가 성인이 되어 의사가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친척 결혼식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오랜만에 만난 고모인 자기에게 인사는커녕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까? 자기 자녀보다 더 신경 써서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본인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나 봅니다.

아무튼 이 자매님은 너무나 섭섭했습니다. 그래서 친한 친구에게 이 서운한 마음을 이야기했더니, 친구가 “만약 다시 남동생 죽었을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조카를 받을 것 같아?”라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이 자매님은 한참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조카가 커서 나를 섭섭하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맡을 거야.”

이 모습이 가치 있는 삶입니다.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닌, 그냥 ‘사람’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진짜로 가치 있는 삶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가치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베드로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하시지요. 가치 있는 삶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한 없이 용서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따르는 우리 역시 한계를 두지 않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을 묵상해야 합니다. 당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사랑을 주시는 모습을 우리는 복음에서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직접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에, 구원의 길에서 제외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큰 빚을 탕감받고도 동료의 작은 빚을 참지 못하는 못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한 모습으로, 절대 가치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가치 있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모습은 어떨까요?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오늘의 명언: 위대한 행위라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위대한 사랑으로 하는 작은 행동이 있을 뿐입니다(성 마더 데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