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권자의 힘’ 보여줄 때>
국회의원들 사이에는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의원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중학교 때 나의 친구, ㅅ군은 두차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마를 하고 그 후유증으로 몇해 전 심장마비로 이 세상을 떠났다. 그를 만나기로 약속한 날을 불과 며칠 앞두고 그의 부음을 듣게 되었기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총성 없는 전쟁인 선거판에서 그에게 낙선은 정치적 도산이고 인생의 파산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선거는 스포츠 경기와 같아서 2등은 별 의미가 없다. 그러기에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 정국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보다 참담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후보 최후 등록일이 불과 20여일, 대선일은 불과 40일을 남겨놓고 있어도 정해진 후보도 분명치 않고, 정당정치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정책대결이나 토론은 없고 입에 담기도 민망스러운 원색적인 비방만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선거문화는 그 나라 국민의 정치수준과 일치한다’고 하지만 끝없는 정치적 지각 변동으로, 요동치는 대선 판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어지럽기 그지없다. 쏟아지는 정보는 많아도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도무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정치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공자는 군사력이나 경제력보다 믿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치가를 타고난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고 정치인의 말이 거짓말에서 거짓말로 끝난다 해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것이 정치풍토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래서 후흑학(厚黑學)이란 책에서는 정치인을 두고 ‘얼굴이 두껍고 마음이 시커먼 자들’이라고 비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정치이고 선거는 선거이다. 모든 국민이 다 국가경영에 참여할 수 없기에 국민의 대표를 뽑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선거보다 더 훌륭한 정치제도는 없기 때문이다. 인류역사를 봐도 그러하지만 우리 국민이 선거의 권리를 가진 것은 불과 50년, 국민의 피와 땀으로 얻어낸 자유선거는 불과 10여년이 채 되지 않는다.
오늘 우리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심부름꾼이 아니라 보스의 심부름꾼으로, ‘줄서기 정치, 패거리정치’로 민망스러운 의회정치를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러한 풍토에서 우리는 대선후보들에 대한 정확하고 충실한 정보도 없이 객관식 선다형 문제를 풀듯이 후보 중 한사람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선거는 언제나 ‘후보자’와 ‘유권자’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내 손으로 국가의 공권력을 맡겨,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할 위정자를 뽑는다는 데 최대의 영향력을 행사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정치참여를 단순히 선거에만 국한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여러 매체를 통해, 개인 혹은 단체로서 정당이나 정치인들에게 보다 더 적극적으로 충분한 의사전달을 해야 할 것이다. 정치를 정치인의 손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유권자인 국민이 적극적으로 정당이나 정치인의 정책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때, 그리고 이러한 정치문화가 정착될 때만이 우리는 오늘의 이 참담한 정치현실을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2007.11월 기고)
-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 -〈조광호/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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