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을 살려내는 길
지난해 7월 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 중 사망한 해병대 채모 상병은 내가 강의하러 다니며 한 번쯤 마주쳤을 대학생이었다. 복학했으면 다시 평범한 학생으로 교정에서 인생의 다음 단계인 취업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단과대 앞 추모수와 추모석 위에 그의 영혼이 깃들어 있을 뿐이다. 분단국가에서 다반사인 군 사망 사건은 기삿거리조차 되지 않지만, 이 일은 역사적 전환점을 만든 1894년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이 이 땅에서 되풀이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두 사건은 거짓말과 변명, 은폐와 조작으로 일관되었다. 적국인 독일과 내통했단 매국 혐의를 참모본부의 유대인 드레퓌스 대위에게 덮어씌운 것과 채 상병 사망 책임을 상급자가 아닌 하급자에게 떠넘기려고 한 것이 유사하다.
유대인에 대한 인종 편견과 사병의 사물화로 인간 존엄성을 침해당했다. 5년 뒤 정보국장 피카르 중령이 진범을 찾아냈지만 오히려 피카르 중령을 체포한 것이나 새 군사법원법에 의해 책임자들을 적시, 경찰에 즉각 이첩한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을 항명죄로 입건한 것 또한 판박이다.
이들은 국민이 우선인가, 국가가 우선인가라는 국민국가의 본질을 되묻는다. 적법한 처리를 상급자들이 권력자들과 내통해 한순간 뒤바꾸고, 혼란을 초래한 이들은 반성은커녕 비겁하게 법의 틈새에 숨어 자신들을 변호하고 있다. 책임을 묻는 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은 공공재인 권력을 사유물 삼고 공공조직을 사당화하는 행위다.
더불어 전쟁으로 독일을 향한 프랑스 국민의 적개심이 큰 데 기대어 군대가 국가주의를 지탱하던 것과, 분단과 휴전 상태에서 강력한 군대가 늘 한국 정치의 중심부에 있는 것이 닮았다. 국민국가의 군대에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국가통치 차원의 명령이 일치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따른다.
이의 통합을 위해 정치권력은 공공성과 합목적성을 유지해야 한다. 정치하의 군대가 개인의 욕망이나 조직 우선주의에 지배당하는 순간 그 구성원은 자신의 존재 가치가 부정당했단 배신감을 느낀다.
하여 안전장비도 없이 급류 속으로 들어가라고 한 부당한 명령이나 병사의 죽음에 대한 지휘관들의 책임회피는 그 통합을 붕괴시켰다. 병사들의 안전판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징표다. 내팽개친 징표는 군대 운영권자인 국가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것을 의미한다.
우려되는 것은 드레퓌스는 종신 금고형을, 진범은 무죄 판결을 받은 불의를 덮기 위해 사건 관련자들을 전부 사면한다는 사면법을 프랑스 의회가 제정해 유야무야 넘어간 것처럼, 채 상병 죽음에 책임 있는 자들을 뒤로 빼돌리고 군대 최고명령권자의 권한으로 적당히 봉합하고자 하는 행위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주호주대사 임명 및 철회 건과 관련자들의 국회 등극은 이를 잘 보여준다. 프랑스는 극우파·반유대주의자·부패 언론과 진보파·사회주의자·지식인들이 대결 상태에 놓여 있었다. 우리도 갈라진 이념과 이해관계를 이용해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1898년 에밀 졸라는 ‘로로르’에 ‘나는 고발한다’로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파사현정의 재단을 세워 사회를 일깨웠다. 1906년 마침내 재심을 받아들인 프랑스 최고법원은 드레퓌스의 무죄를 확정했다. 정의를 요구하는 한국 시민들이 바로 에밀 졸라의 후손인 셈이다. 그들은 또한 국가가 정의인가, 정의가 국가인가를 묻고 있다.
N. 할라즈의 <드레퓌스 사건과 지식인>을 번역한 황의방은 이 사건으로 신체의 자유를 기초로 하는 근대 형사법의 원리 재확인과 군에 대한 문민통솔의 우위를 마련하고 프랑스 지식인들의 사회 참여 확대 등이 이뤄졌다고 했다.
채 상병 사건은 우주만큼의 무게를 가진 생명은 국가의 소유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 사건 처리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지 않으면 군 수뇌부나 정치가들 누구도 군대의 명령권자가 될 수 없다.
프랑스가 그 사건으로 확고한 공화국의 토대를 놓았던 것처럼, 우리도 민주화와 무혈혁명으로 재구축한 민주공화국 체제를 튼튼히 착근시키는 일이 바로 채 상병의 소생과 다름없을 것이다.
원익선 교무 원광대 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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