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1주일
(이사야2.1-5.로마13.11-14ㄱ.마태24.37-44)
< 너희는 준비하고 깨어 있어라 >
주님을 뵙는 기쁨과 설렘, 그리움과 기대로 가득 찬 희망의 기다림!
내년 봄 화사하게 피어날 수선화며 튤립 구근을 열심히 심고 있습니다. 피정 오신 교우들이 군락을 이룬 청초한 꽃들을 보고 탄성을 올리고 사진을 찍고 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꽃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심는 입장이 되다 보니, 그 작업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화사한 꽃 무리 그 배경에는 누군가의 노고가 있다는 것, 그래서 꽃 한 송이 앞에서도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땅을 갈아엎은 후 고랑을 내고, 고랑 사이에 구근을 일일이 꽂고 나서 흙을 덮어줍니다. 혹한을 잘 넘기라고 볏짚도 덮어줍니다. 그리고는 꽃대가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야겠지요.
기다림이라는 단어 참 가슴설레게 합니다. 오랜 세월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 살다 보니 너그러움, 여유, 유유자적, 은근함, 결국 기다림의 영성, 기다림의 미학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안에서도 기다림이 부족합니다. 어떤 지향을 두고 열렬히 간구하고 또 실제적인 삶 안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면 이제 여유를 갖고 하느님의 때, 하느님의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빠름’을 원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바름’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말입니다. “인간에게 큰 죄가 두 가지 있는데 다른 죄들도 모두 여기에서 나옵니다. 조급함과 게으름이 그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때 정말 한 3분만 참았더라면!’ 하는 교도소 수감자들 제가 한둘 만난 게 아닙니다. 이미 깨져버린 사랑,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인연들의 원인을 추적해보면 결국 기다릴 줄 모르는 조급함이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은 대단하십니다. 인내의 달인이셨습니다. 성격 급한 저 같았으면 30년 동안 나자렛에서의 숨은 세월을 못 참고 폭발했을 것입니다. 대체 이 아까운 시간 다 흘러가고 언제 공생활 시작할거냐고, 하느님께 따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묵묵히 아버지께서 신호를 보내실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사사건건 트집 잡고 늘어지는 적대자들, 저 같았으면 한번 싹쓸이를 하던지 판을 뒤집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또 다시 시간이 흐르고 흘러 대림 시기 첫날을 맞이했습니다. 영광스런 주님 부활에 앞서 그를 준비하는 사순시기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땅에 육화강생하신 대축제 성탄에 앞서, 그를 준비하는 대림 시기가 있습니다.
그냥 기다림이 아닙니다. 평생을 기다려왔던 주님을 뵙는 기쁨과 설렘, 그리움과 기대로 가득 찬 희망의 기다림입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내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의 너그러운 기다림이어야 합니다. 결국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기다림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고대하는 영적인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해 아주 구체적인 행동강령을 우리에게 지침으로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태오 복음 24장 42절)
많은 경우 우리는 외칩니다. 왜 빨리 하느님께서 내 이 큰 고통, 깊은 슬픔에 개입하지 않으시는지?이 비정하고 사악한 세상을 왜 빨리 깔끔히 정리하지 않으시는지? 왜 저 악인들이 떵떵거리며 살도록 마냥 놔두시는지...
하느님은 우리처럼 일희일비하지 않으십니다. 몇 사람만 바라보지 않으십니다. 인류 전체를 바라보십니다. 그래서 동작이 느리십니다. 대신 크고 여유로운 걸음을 걸으십니다. 우리 죄인들이 충분히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할 시간을 주기 위해 아주 천천히 시험지를 걷으십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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