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지 않아도 가치 있는 삶
우리 주위에는 불안과 스트레스로 인한 수면 장애로 고생하는 사람이 뜻밖에 많다. 지난 몇 년 동안 우울증으로 진료받는 환자가 계속 늘어났다. 통계를 보면 2022년에 이미 100만 명이 넘었고 그 가운데 20대 여성의 증가가 가장 눈에 띈다. 우울증은 자살 원인 가운데 첫 번째다. 견디기 힘든 고통의 어두운 터널 속에서 그 끝이 보이지 않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우울증을 오래 앓는 사람을 만나면 조심스러워진다. 나는 섣불리 판단하거나 도움말을 주려 하지 않고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은 그것을 털어놓기가 쉽지 않다.
가까운 사람들이 우울증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잘못된 반응을 보여서 병세를 키우기도 한다. 병은 자랑하라고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정신병과 정신병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낙인찍기 때문에 치료를 회피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능력과 성취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아프고 약한 자신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자신이 안 괜찮고 힘들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곁에 남아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도움이 되고 고립될수록 치료가 어렵다.
우울증 환자 가운데 35%가 60대 이상이고 노인 우울증도 증가 추세이지만 한국은 청소년 우울증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다. 입시 지옥과 경쟁의 중압감에 맘껏 뛰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교사나 성직자, 수도자도 예외가 아니다. 특별한 원인이 없이 생기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자기 기준이 높고 남을 많이 의식하는 사람에게 더 쉽게 발병한다고 말한다.
이수연 작가는 심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으로 스물세 살 때 폐쇄 병동에 입원했다. 긴 입원 생활과 상담 치료,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그는 글을 썼다. 첫 에세이집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놀, 2018)에서 그는 행복하지 않고 나아가지 못해도 살아갈 가치와 이유가 있다고 담담히 말한다.
이 투병기는 삶에 대한 어떤 애착도 기대도 없이,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무섭고, 앞으로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갇힌 절망적인 우울증 환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아픔을 간직한 채 ‘흔들리고 망가져도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정신과 주치의는 인내와 믿음을 가지고 그의 얘기를 경청하며 동반했다. 그는 무너졌기에 새로워졌고, 자신과 고통을 겪는 이웃에게 말을 걸면서 창작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마음의 감기’를 앓으면서도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우리는 아픈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 격리하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의 인식과 태도를 바꿀 수 있을까?
글 _ 신한열 프란치스코 수사(떼제공동체 수사·공익단체 이음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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