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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길동무 얘기

국가안보 망각하는 ‘대통령 휴대폰’의 비밀 [박찬수 칼럼]​

국가안보 망각하는 ‘대통령 휴대폰’의 비밀 [박찬수 칼럼]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9월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태풍 ‘힌남노’의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의 광역단체장과 전화로 대응 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대통령의 통화는 모두 비화 기능을 가진 공용 폰으로 해야 하지만, 윤 대통령은 개인 휴대폰으로 장·차관 또는 외부 인사들과 통화한 사례가 많아 해킹이나 도·감청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9월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태풍 ‘힌남노’의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의 광역단체장과 전화로 대응 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대통령의 통화는 모두 비화 기능을 가진 공용 폰으로 해야 하지만, 윤 대통령은 개인 휴대폰으로 장·차관 또는 외부 인사들과 통화한 사례가 많아 해킹이나 도·감청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통령실 제공

박찬수 | 대기자

지난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윤석열 대통령의 개인 휴대폰에 대한 통신영장을 법원에 신청했지만 기각됐다고 밝혔다. 채 상병 순직 사건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는 윤 대통령은 그 시점에 개인 휴대폰으로 국방부 장·차관 및 국방비서관과 여러 차례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공수처의 통신영장 신청은 바로 이 부분을 규명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 등과 개인 전화로 통화한 건, 또 다른 측면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대통령이 비화(秘話) 기능 없는 개인 전화를 이렇게 마구 사용한 건 국가안보에 얼마나 위협적인지, 용산 대통령실의 경호·보안 시스템은 얼마나 허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구나 윤 대통령과 통화할 때 이종섭 장관은 우즈베키스탄 출장 중이었다. 미국 같으면 당장 의회에서 청문회를 열 만한 사안이다. 최근 미국 정부가 한국계 북한 전문가 수미 테리를 기소한 걸 두고 “문재인 정부가 아마추어처럼 해서 그렇다”고 주장했던 현 정권은 그보다 훨씬 아마추어적으로 대통령실의 보안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윤 대통령의 개인 폰 사용은 대통령으로서 책임감과 소명의식 부재를 시사한다. 대통령실의 모든 비서관급 이상 직원에겐 음성을 암호화하는 비화 기능이 탑재된 공용 휴대폰을 지급한다. 비화 전화기 제작은 국정원이 하지만, 관리·감독은 경호처가 맡는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시절 웨스트윙(집무동)에선 모든 직원의 개인 폰 사용을 금지했다. 우리는 그 정도까지 아니지만, 대통령 주재 회의에 참석하는 비서관들은 휴대폰을 문밖에 놓고 들어가야 한다. 휴대폰을 원격 조종해 회의 내용을 녹음하거나 촬영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문재인 대통령 시절 제1부속실장을 지낸 조한기씨는 “문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에 쓰던 휴대폰을 갖고는 있었지만, 재임 중에 사용하는 걸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조 전 실장은 “집무실이나 관저에서 업무용 통화를 할 때는 항상 비화기 달린 유선 전화를 썼고, 외부에서 휴대폰을 쓸 때는 공용 폰을 사용하셨다.

부속실 직원들이 밤 10시까지 관저에서 대통령을 보좌했는데, 그 이후엔 몰라도 그 전까지는 대통령이 개인 폰을 쓰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재임 시절에 통화한 적이 있는 외부 인사는 “대통령 전화를 몇 번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발신전화 표시 제한’이란 문구가 떴다. 공용 전화라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갈수록 심해지는 휴대폰 의존에서 대통령만 자유롭긴 어렵다. 미국에서도 오바마와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 전화를 쓰지 말라는 백악관 내부 지침에도 끝내 블랙베리와 아이폰을 사용했다. 그러나 오바마의 블랙베리는 카메라·마이크·인터넷 등 많은 기능이 제한됐고 매달 백악관 통신팀의 해킹 검사를 받았다. 두 대의 개인 폰을 쓴 트럼프는 한 대는 트위터용으로, 다른 한 대는 전화용으로 사용했는데, 보안 문제로 통신팀과 자주 마찰을 빚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트럼프보다도 개인 폰 사용에 더 몰두하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지금 용산 분위기로는 경호처나 국정원의 누구도 대통령에게 보안 문제를 지적하기 어려울 것이란 점이다. 국정원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은 “경호처가 대통령의 개인 전화를 제대로 검사하고 관리하는지 알려진 게 없다.

우즈베키스탄의 국방부 장관과 개인 폰으로 통화하는 건, 미국·러시아·중국·북한에 도청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수처가) 전화 내용을 궁금해하는데, 남북관계가 좋으면 북한에 물어보는 게 더 빠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게 단순한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지난해 4월 미국 정보기관의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이 미국 언론에 보도돼 논란이 일었다. 그때 뉴욕타임스는 용산 대통령실의 내부 대화를 담은 비밀 보고서가 ‘신호정보에 기반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휴대폰 감청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그렇게 당하고도 대통령이 개인 폰을 무시로 사용할 정도로 용산의 보안 체계는 엉망이다.

법원이 대통령 개인 전화의 영장을 기각한 건 나름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채 상병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대통령실의 무너진 보안 의식과 책임감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한번 대통령의 휴대폰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싶다.

대통령의 위태로운 전화가 외국에 나간 국방부 장관 한 사람뿐이겠는가. 해킹을 당한 흔적은 없는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살피는 게 국익엔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보다 더 휴대폰에 의존할 미래의 대통령들을 위해서도 그렇다.

pc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