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간 수요일
(1코린12.31-13.13.루카7.31-35)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우리 기도를 들어주실까요? 안 들어주실까요? 많은 이가 들어주신다고 답합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이렇게 답하기도 합니다.
“제 기도는 하나도 안 들어주세요.”
부모님의 건강을 기도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안 좋아지신다고 하고, 자녀의 진학을 위해 기도해도 현재 삼수째라고 하십니다. 남편의 승진을 기도했는데 갑작스럽게 퇴직할지 모른다는 말도 들었다고 하십니다. 그 밖에도 기도하면 더 나쁜 상황이 되는 것 같아서 기도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것이 아니냐고 물으십니다.
정답을 말씀드리면, 주님께서는 우리 기도를 100% 들어주십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우리 뜻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맞게 이루어집니다. 주님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도구가 절대 아닙니다.
자기 뜻이 하느님 뜻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끝까지 매달리며 기도하는 우리에게 커다란 깨달음을 주십니다.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 ‘하나도 자라지 않았어.’라고 불평합니다. 다음날 나와도, 또 그다음 날 나와도…. 결국 포기하려고 할 즈음 땅 위로 무엇인가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쑥쑥 자라면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 기도도 이렇습니다. 그래서 멈춰서는 안 되고, 또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계속 밭에 나가야 씨가 자라나 열매 맺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뜻보다는 주님 뜻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기도를 다 들어주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희망이며 기쁨임을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장터에서 노는 아이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장터에서 피리를 불 때는 함께 춤춰야 하고, 장터에서 곡을 할 때는 함께 슬퍼해야 놀이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 뜻에 맞춰서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정반대의 모습을 취했습니다.
회개의 세례를 외쳤던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라며 반대했고, 구원의 기쁨을 전하는 예수님께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라면서 반대합니다.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보다는 자기 뜻만을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뜻만을 주장한다면, 주님의 뜻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커다란 사랑을 발견할 수 없으며, 그 안에서 기쁨도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주님 뜻’을 따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지혜입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오늘의 명언: 잡초는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다(랠프 월도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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