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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며 목 축일 샘-法頂

<용서란>​

<용서란>

한 제자가 스승에게 묻습니다.

"전 생애를 두고

제가 행할 수 있는

가르침을 한마디 내려 주십시오."

스승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용서이다."

용서란

남의 허물을

감싸주는 일입니다.

또 너그러움이고 관용입니다.

용서는 인간의

여러 미덕 중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미덕입니다.

저 자신을 포함해서

사람에게는누구나

크고 작은 허물이 있습니다.

허물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 허물을 낱낱이

지적하면서 꾸짖으면

결코 고쳐지지 않습니다.

허물을 지적받고

질책받는 사람은

그만큼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미리 가려야 할 것은,

선의의 충고와 꾸짖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선의의 충고는

인간 형성의 길에 유용합니다.

그렇지만

함부로 꾸짖거나

흉을 보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허물을 감싸 주고

덮어 주는 용서는

사람을 정화시킵니다.

순식간에 정화시키고

맺힌 것을 풀어 줍니다.

용서는

마음속에 사랑과

이해의 통로를 열어 줍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정과 사회를 가릴 것 없이

용서의 미덕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남의 결점만을

들추는 사람은

남이 지닌 미덕을

볼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다 결점 투성이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결점만을 들추면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미덕을 놓치게 됩니다.

ㅡ남의 허물이나

결점이 눈에 띌 때

그 시선을 돌려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게는 그런 허물과

결점이 없는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중생계는

너나 할 것 없이

비슷비슷한

속성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법구경>에 이런 법문이 있습니다.

남의

허물을 보지 말라.

남이 했든 말았든

상관하지 말라.

다만 너 자신이 저지른

허물과 게으름만을 보라.

또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을 보면

한 수행자가 선배인 원로에게 묻습니다.

"내 이웃의 잘못을

보았을 때

그것을 지적하지 않고

그대로 덮어 두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요?"

누구나 지닐 수 있는

의문입니다.

이때 원로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이웃의 잘못을

덮어 주면 그럴 때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잘못을

덮어 주신다네.

그리고 우리 이웃의

잘못을 폭로할 때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폭로하시지."

용서가 있는 곳에

神이 계십니다.

이 말을 기억하십시오.

부처와 보살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것은

일종의 업의 놀음입니다.

업業이란 무엇입니까?

몸으로

그렇게 행동하고,

입으로

그와 같이 말하고,

속으로

그와 같이 생각하는 것,

이것이 업입니다.

내가 살 만큼 살다가

이 세상과 작별할 때

내 영혼의 그림자처럼

나를 따르는 것은

내가 살아온 삶의 자취이자

찌꺼기인 업입니다.

업은 한 생애로

끝나지 않습니다.

ㅡ업으로 인해 맺힌

꼬투리를 풀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유로워집니다.

어디에 맺혀 있으면

안팎으로 자유롭지 못합니다.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고

늘 관계 속에서

살기 때문에

서로의 관계가

투명해야지,

무언가 꼬투리가 있어서

얽히게 되면

서로가 불편합니다.

그것은 누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그렇게 만듭니다.

- 얽히고설킨 업의

관문에서 벗어나십시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렇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 법정 스님 법문집 <일기일회>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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