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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길(平和)

한때 우리를 설레게 했던 아날로그적 풍경

그럼에도 책을 읽어야 한다면

한때 우리를 설레게 했던 아날로그적 풍경

최근 화제가 되었던 '퍼펙트 데이즈'를 아주 잔잔하면서 인상적으로 보았다. 주인공 히라야마로 출연한 야쿠쇼 코지는 한국 관객에게 매우 인기 있다. 히라야마의 아날로그적 삶이 꽤 인상적이다. 카세트테이프, 필름 카메라, 헌책방, 정말 한때 우리를 설레게 했다. 그중에서도 헌책방은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책을 소중하게 여기고 늘 끼고 다니던 시절엔 사고 싶은 책이 많았고, 헌책방은 그 부담을 많이 줄여 주었다.

"강철군화", "사람아 아, 사람아!", "아리랑", "닥터 노먼베쑨" 같은 책들은 일반 서점에서 확인하고 훗날 헌책방에서 샀던 책들이다. 헌책방에서 구입한 "오늘의 思想 100인 100권"(新東亞 1986년 1월호), "현대 한국의 名著 100권: 1945-1984년"(新東亞 1985년 1월호), "80년대 韓國사회 大논쟁집-격동 80년대 韓國사회를 움직인 92대 논쟁 大集成"(월간중앙 1990년 1월호) 같은 월간지 별책 부록도 아주 중요한 자료였다.

인터넷이 대중화하기 전에는 헌책방에서 찾은 이런 자료, 방대한 사전, 신문 스크랩 등이 정보와 자료를 정리하는 데 꽤 유용한 수단이었다.

(왼쪽부터) 다가와 겐조의 "예수라는 사나이"는 헌책방에서 구하기 힘든 책이었다. 정말 기가 막힌 이 책을 다시 출간했으면 해서 시도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1983년에 출간된 이후 2022년, 무려 40여 년 만에 다시 출간되었다; 헌책방에서 발견한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 초판본. 이 책은 헌책방에서 몇 권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초판본은 개인 컬렉션으로 보관 중이다. ©김지환

한때는 헌책방에서 구입했던 책을 노트에 적어 두기도 했다. 어쩌다 펼쳐 보면 온갖 잡다한 그러면서도 꽤 중요한 책들이 나를 거쳐 갔음을 확인한다. ©김지환

“남의 손때가 묻은 헌책들에 왜 그리 정이 가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남이 여기저기 밑줄을 그어놓거나 낙서를 해놓으면 그 책이 더욱 사랑스러워지는 것도 참 이상한 일이었다. 표지를 들치면 누가 누구에게 준다는 사인을 해놓은 책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희귀한 우표를 손에 쥐었을 때에 못지 않은 기쁨을 느끼게 되니, 이 역시 헌책방 한구석에서 나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다.

체취와 연륜이 느껴지는 ‘남이 보던 책’에 대한 애착을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결코 느낄 수 없을 것이다.”(이승하, "헌책방에 얽힌 추억: 이승하의 독서 일기", 모아드림, 2002, 129쪽)

헌책방의 정취를 잘 표현해 낸 이승하 선생의 헌책방에 대한 단상이다. 헌책방에 가득히 쌓여 있는 책들은 전에는 다른 누군가의 것으로서 기운을 발휘하다가 원주인을 떠나 새로운 기운을 발하게 해 줄 새 주인을 기다린다.

헌책방에서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즐거움은 온갖 다양한 책을 흝어보면서 고르는 재미에 있다. 책을 둘러보고 읽다 보면 왠지 나를 부르는 책이 있고, 그러한 책은 차마 뿌리칠 수 없어 구입하게 되는데, 이거 언제 보겠나 싶겠지만 언젠가는 어떻게 해서든 읽게 된다.

히라야마는 틈틈이 헌책방에 들러서 책을 사고, 잠들기 전 책을 읽으며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다. (이미지 출처 = '퍼펙트 데이즈' 화면 갈무리)

헌책방뿐만 아니라 인터넷 서점도 많은 설렘을 안겨 주었다. 2000년대 초에는 ‘모닝365’라는 인터넷 서점이 있었는데, 주문한 책을 지하철 부스에서 받아 간다. 을지로입구역과 홍대입구역 모닝365 부스에서 주문한 책을 받아 갈 때의 즐거움은 잊지 못한다. 그렇게 책을 사는 만큼 꽤 열심히 읽었다. 가방에는 몇 권씩 따로 읽을 책을 담아 두는데, 지하철에서 읽을 책을 정해 두기도 했다. 5권짜리 "소설 목민심서"도 지하철에서 쭉 읽었던 것 같다.

확실히 책을 계속해서 읽어 가면 읽는 근육도 발전한다. 지금과 비교하면 글자도 작고 빽빽했던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모를 정도다. 한 번은 교보문고에서 꼭 읽고 싶었던 "사이공의 흰옷"을 발견하고는 서서 쭉 읽었는데, 잠시 중간에 화장실 한 번 갔다 와서 뒷부분을 마저 쭉 읽어 갔다.

그런 일이 정말 가능했다. 책을 읽어야 하는 많은 이유를 이야기하지만, 독서 자체가 재미와 즐거움이던 시절이다. 그러니 책은 참 좋은 선물이었고, 그만큼 누군가에게 선물하기가 편했던 점도 있다.

원조 모바일이 새로운 모바일에 자리를 내주다

언젠가 이어령 선생님이 사석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책은 알고 보면 최초의 모바일이었다고. 인쇄술 발전 이후 책은 정말 오랫동안 잘 버텨온 듯하다. 텔레비전, 영화 같은 영상물이 강력하게 대두되어도 책을 읽는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책이 한때 모바일이었듯, 또 다른 모바일 경쟁자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한참 밀리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은 우리를 설레게 했던 카세트테이프, 필름 카메라, 헌책을 순식간에 아울러 버리기도 했다. 지하철 안에서 책이나 신문을 보던 사람들이 이제는 폰만 들여다본다.

사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에도 영상물은 급속하게 책을 대체할 기세였다. 1990년대에 발전하기 시작한 문화연구 영역에서는 ‘영화 읽기’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영화를 비롯한 영상물도 하나의 텍스트로 인식되었다. 그럼에도 휴대성이나 콘텐츠 양에서 역부족이었기에 책은 여전히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 등장과 그것을 통해 유통되는 콘텐츠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사람들은 모바일 환경에서 보고 쓰는 욕구를 해소한다. 최근에는 유튜브가 독서를 대체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확실히 유튜브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볼거리, 들을 거리 그리고 정보가 넘쳐난다. 역사를 비롯한 인문학 콘텐츠의 수준도 절대 뒤처지지 않고 잘 정리해 놓았다.

언젠가 청나라 역대 황제 시기를 정리해 주는 2시간 20분가량의 유튜브를 듣는데,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다. 역사 유튜브를 들으면서 잘 모르고 지나갔던 한국사의 많은 부분을 배우기도 한다. 특히 한국의 50대 남성이 유튜브를 많이 듣는다고 한다.

유튜브를 통해 온갖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고 있으니, 책을 충분히 대체하는 셈이다. 이런 추세는 더욱더 강화될 테고, 유튜브를 비롯한 콘텐츠가 기존의 독서를 대체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버이날에 부모님들이 별로 받고 싶지 않은 선물로 책과 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젠 책이 사람들에게 더는 매력적이지 않고, 누군가에게 받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요즘 거리에 버려진 책이 많이 보인다. 예전에도 급하게 집 정리하면 책을 내놓았지만, 요즘 내놓은 책이 더 눈에 많이 띈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야 한다면 이런 이유가 있겠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기에 출판이 사양산업으로 여겨지는 현실이 썩 반가울 수는 없다. 문제는 이제 책을 만드는 사람도 예전처럼 열심히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원고를 교정 보면서도 틈틈이 온갖 분야의 책을 사서 읽었다. 편집자는 책 생산자이면서 가장 책을 많이 소비하는 직종이었다. 하지만 이젠 예전 같지 않다.

이런 변화 속에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어떻게 찾고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봤다. 한국 성인의 절반 이상이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뉴스도 있었는데, 한국인의 독서량은 세계적으로도 하위권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처럼 저조한 독서량이 유튜브를 비롯해 다른 식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 한국인이 책을 적게 읽는다고 해서 지식 수준이나 사회 비평 의식이 약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일본이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지만, 자민당 장기 집권을 좌시하는 한국보다 훨씬 처지는 민주주의 수준을 독서의 상관관계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독서량 저조가 한국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

최근의 독서량과 관련해 많이 이야기되는 것이 문해력 문제다. 한국은 자랑스러운 문자 한글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계적으로 문맹률이 가장 낮은 편이다. 문제는 글자를 읽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글자로 펼쳐진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관건인데, 그 점에서는 많은 문제가 있다고 진단한다.

2022년에 생겨난 ‘맥락맹(脈絡盲)’은 ‘글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해력이 부족한 사람을 일컫는 멸칭’을 뜻하며, 문해력 문제의 현실을 반영한 신조어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많은 양의 지식을 갖고 살아가지만, 그 맥락을 살피는 데서는 소홀할 때가 많다.

그 원인을 인터넷 환경에서 읽는 힘이 약해진 데서 찾는데, ‘맥락맹’ 문제는 소통을 방해하고 때론 가짜뉴스가 판치는 공간을 허용할 수도 있다. 유튜브를 통해 여러 정보를 습득하는 것 못지않게 여전히 책을 열심히 읽어야 하는 이유다.

또한 그리스도인에게 독서는 새로운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겠다. 진득하게 책 읽기를 방해하는 모바일 환경 속에서 책 읽는 조건을 만드는 일은 어느 정도 결단이 필요해졌다. 잠시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야 하는데, 마치 신체 일부처럼 여겨지는 그것과 잠시 거리를 두는 일은 잠시 일상의 공간을 떠나 조용히 묵상하는 피정과도 비슷한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예전 오락거리로서 독서, 지식 습득으로서 독서와 차원을 달리한 수행으로서 독서를 상상해 본다. 독서를 통해 복잡다단한 관계망을 벗어나 온전한 자신의 시간을 갖는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열심히 읽겠지만, 성경뿐만 아니라 적절한 책을 골라 꾸준히 읽어 간다면, 퇴화한 독서 근육을 키워줌과 동시에 그 자체가 하나의 수행이 되리라 생각한다. 또한 기도가 될 수도 있겠다. 물론 이를 위해 적절한 책을 풍성하게 소개해 주고 방향을 잡아주는 틀이 마련되면 더할 나위 없다.

철학자 강신주 선생은 엄마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 주기에 정서적 측면에서 책은 한동안 지속되리라고 말했다. 꽤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 엄마 아빠는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쥐여 주곤 한다. 그러면서 요즘 도파민 과잉 문제를 이야기한다.

갈수록 책은 더 안 팔리고 독서량도 계속 줄어들 것이다. 이런 추세를 거스르는 일도 쉽지는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독서를 통해 우리가 놓치는 많은 부분을 채워가야 한다고 본다. 자연스럽게 독서를 이어 가는 독서 생태계를 고민해야 하고, 또 새로운 시대에 맞는 독서의 방향성도 모색해야 할 듯하다. 인간적인 삶을 가꿔 가는 치유제로서 독서도 고민해 봐야 할 때다.

김지환(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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