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교의 지각 변동, 유럽은 이제 변방
인도네시아 신자들이 9월 4일 자카르타의 성모승천대성당 밖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교황의 아시아-오세아니아 4개국 사도 순방의 첫 방문지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에서 이슬람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다. OSV
오는 12월 추기경으로 서임되는 일본 도쿄대교구장 기쿠치 이사오 대주교가 유럽이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변방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쿠치 대주교는 지난 8일 바티칸에서 열린 신임 추기경 기자회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하는 변방 개념에 비춰보건대, 변방이 유럽으로 이동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는 4세기 이후 그리스도교 중심 역할을 해온 유럽을 비롯한 서구 교회가 신앙 침체와 종교인구 감소로 서서히 변방이 돼가고 있다는 말이다. 또한 그동안 변방으로 불려 온 남반구(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가 새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같은 종교지형 변화는 오래전부터 회자된 얘기지만, 아시아의 고위 성직자가 바티칸에서 직접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서구 교회가 ‘작은 양 떼’ 체험하게 될 것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이틀 전 함께 추기경에 임명된 이그나체 도그보(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아비잔대교구장) 대주교와 하이메 스펭글러(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대교구장) 대주교도 나와 임명 소감과 지역 교회 상황 등을 전했다. 신임 추기경들은 남반구 교회는 북반구 서구 교회와 나눌 수 있는 선물이 많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그러면서 큰 선물로 풍부한 사제 성소와 신앙의 활기를 꼽았다.
도그보 대주교는 “아프리카 교구들은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만 영적으로는 매우 부유하다”며 “우리는 기쁨에 넘치는 신앙을 보편 교회와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쿠치 대주교는 “일본을 제외하고 아시아에는 사제 성소가 풍부하다”며 “과거에 나눔은 서구의 부자 교회가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를 돕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사제를 파견하는 등 그 성격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필리핀 출신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교황청 복음화부 첫복음화와 신설교회부서 장관 직무대행)추기경도 지난 8월 교황청 전교기구 기관지 피데스(Fides)와의 대담에서 “많은 서방 국가에서 교회가 다시 ‘작은 양 떼’ 체험을 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변방의 이동에 대해 같은 생각을 피력한 바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최근 비슷한 취지로 말한 적이 있다. 교황은 아시아-오세아니아 4개국 사도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인 9월 18일 수요 일반알현에서 “교회는 로마나 유럽보다 훨씬 더 크고, 그 나라들(4개국)에서 훨씬 더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신자들은 가톨릭교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여전히 지나치게 유럽 중심적(Eurocentric)”이라고 지적했다.
교황이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하는 남반구, 특히 아시아에 주목하는 점은 방문 횟수에서도 확인된다. 교황은 2013년 즉위 이후 한국(2014년)을 필두로 아시아를 7차례 방문했다. 방문국은 13개에 달한다. 유럽이나 미국 방문 횟수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서구 교회 일각에서 역차별이라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려올 정도다.
그리스도교 중심 남반구로 이동 중
종교사학자와 미래학자들은 1950년대 이후 그리스도교 지형의 점진적 변화를 주시해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역사종교학 석좌교수 필립 젠키스는 “지난 1세기 동안 그리스도교의 무게 중심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를 향해 줄기차게 남쪽으로 내려왔다”며 “아시아의 교회들 역시 양적으로, 그리고 자신감에 있어 대단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저서 「신의 미래」)
그는 또 1990년 유럽에는 전 세계 그리스도교 인구의 3분의 2가 살았지만 지금은 4분의 1 미만이고, 2050년까지 5분의 1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아시아 교회 앞에는 적지 않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교는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 비해 아직 ‘소수 종교’다. 또 가난한 사람이 많고, 전통사상과 문화가 뿌리 깊다. 이슬람과 불교·힌두교가 혼재한 다종교 대륙이라는 점도 아시아의 특징이다.
신학자들이 아시아 복음화의 열쇳말로 가난·전통문화·다종교와의 대화, 이른바 ‘삼중 대화’(triple dialogue)를 반복해서 강조하는 이유다.
김원철 선임기자 wcki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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