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일]
(신명6.2-6.히브7.23-28.마르12.28ㄱㄷ-34)
<하느님을 말로만, 입술로만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사랑하십시오!>
선입견이라는 것이 무섭습니다. 복음서를 읽다보면 수시로 예수님과 충돌하는 사람이 율법학자요 바리사이입니다. 그러다 보니 율법학자나 바리사이 하면 다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서도 참다운 신앙인, 예수님께 우호적인 사람들도 꽤 있었습니다. 참 진리를 찾기 위해 한 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코데모는 참으로 열려있는 율법학자였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스승인 가말리엘은 사도들을 보호해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 다가온 율법학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보여준 말투나 태도는 다른 율법학자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복음서에 통상적으로 등장하는 다른 율법학자들은 떠보기 위해, 논쟁하기 위해, 사슬에 얽어매기 위해 악의적인 마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율법학자는 여러모로 달랐습니다. 다른 스승과는 확연히 다른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고 싶어 좋은 의도로 다가온 것입니다. 그가 던진 질문은 참으로 기본적인 질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정말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당시 유다교에는 총613개의 계명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어떤 계명이 더 중요하고 우선적인가 하는 것은 당시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어떤 계명은 굉장히 무겁고 부담스런 계명이 있었는가 하면 어떤 계명은 가볍고 지킬 만 했습니다. 적극적인 계명이248개였고 소극적인 계명이365개였습니다.
첫째 가는 계명이 무엇이냐는 착한 율법학자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신명기6장 4절을 인용하며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그냥 말로만, 입술로만, 기도문 만으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함에 있어 적당히,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혼신의 힘을 다해, 모든 에너지를 다 투자해서 성심성의껏 사랑하라는 당부 말씀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들의 조금은 불성실하고 미온적인 태도, 소극적이고 미지근한 신앙에 일침을 가하는 따끔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은 세상에 반은 하느님께 걸쳐놓은 우리 삶의 모습을 반성케 합니다.
친절하게도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가 묻지도 않았는데 레위기 19장 18절을 인용하시면서 두 번째로 중요한 계명을 가르쳐주십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사실 당시 유다인들에게 있어 이웃은 절친한 친구들, 동료들, 좋은 관계 속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웃은 보다 보편적이고 확장된 의미의 이웃입니다.
착한 사람뿐만 아니라 악한 사람들, 유다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의롭고 깨끗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죄인들과 부정한 사람들, 아군뿐만 아니라 적군, 원수들조차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이 얼마나 보편적이어야 하는가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렇듯 관대하고 폭넓은 이웃 사랑이야말로 율법의 완성을 뒷받침하는 토대입니다.
그간 할례나 안식일 규정, 정결례와 관련된 율법에 목숨을 걸어왔던 율법학자들에게는 뼈아픈 일이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근본이자 최우선 순위는 사랑이라는 진리를 명명백백하게 만천하에 선포하십니다.
사랑의 계명과 관련된 예수님의 가르침은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든다든지, 율법의 근본을 흔든 것이 아니라 사랑의 계명을 원래의 자리로 환원시킨 너무나도 합당하고 당연한 조치였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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