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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노벨상, 그리고 하나>
★삼별초와 호남
대한민국에서 노벨상이 둘 나왔다. 김대중의 평화상(2000년), 한강의 문학상(2024년)이다.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 남쪽 끝 지방, 호남 지방에서 나왔다는 점, 그리고 이 지역에서 일어난 비극, 그중에서도 나라가 외적의 공격에서 국토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만든 군대로부터 국민이 학살당했다는 점이다.
왜 특별히 이 지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초등학교 때였던가? 기억을 더듬다가 거의 사라졌던 ‘삼별초’라는 말이 집혔다. 고려 때, 왕과 사직을 옹위하고 외적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서, 국가의 정규군과 별도로 만든 특수 부대였다고 한다. 본래는 우별초와 좌별초 둘만 있었는데, 여기에 신의군이라는 특별 부대가 하나 더 가세하여 삼별초를 이루었다고 한다. 신의군神義軍. 신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신명을 바치는 군대라는 그 이름이 선뜻 밝아 온다.
1230년대 몽골 제국이 고려를 쳐들어왔다. 삼별초를 앞세운 나라 전체가 나서서 대항했지만,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다음 해,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겨 버티어 보았지만, 그 역시 별 효과가 없었다. 왕은 항복하고 개경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삼별초는 저항했다. 이제는 몽골군과 고려의 군대가 연합하여 삼별초를 뒤쫓았다. 삼별초는 피신하여, 진도를 거쳐 마지막으로 제주도에 도착했다. 거기서 결사 항전했지만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1273년)
그러나 그 정신은 지역민의 유전자 속에 기록되어 '항몽유적지'라는 표지석과 함께 연면히 이어졌다. 4.3과 5.18은 그 지리적 특성과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의 정신적 토양에서 발생했다. 그리고 국민 대부분은 그것을 특정 지역, 특정 시대에 일어난 국지적 사건으로 묻어 두기를 바랐다. 그것을 떠올리는 것은 긁어 부스럼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한강과 5.18
그런데 우연찮은 기회에 한강이라는 어린 소녀의 눈에 그것이 들어왔다. 본래 그 고장에 살던 아버지가 서울로 이사했는데, 누군가를 조문하러 그 도시에 내려갔다 터미널에서 구해 온 5.18 관련 책자를 통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사태의 진상을 알게 된 운명의 밤에 관해 작가는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몰래 그 책을 펼친 것은, 어른들이 언제나처럼 부엌에 모여 앉아 아홉 시 뉴스를 보고 있던 밤이었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소년이 온다", 199쪽)
한강이라는 그 소녀는 그 후 수십 년 세월 동안 그때 받은 트라우마에 갇혀 헤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 썼다. 누구를 의식했다기보다, 닫힌 냄비 안에서 끓어오르는 증기와 같은 고통을 글로나마 방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5.18의 직접 당사자에게서 나온 증언은 많았다. 그런데 제삼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당사자의 아픔을 그대로 느끼며 표현하는 순간, 그것은 어떤 물줄기로 바뀐다. 그리고 그 물줄기는 차츰 커지고 불어나 거대한 물결을 이룬다.
과연, 그 물결은 한 지역을 벗어나 전국으로, 그리고 국경을 넘어 세계로 번져 나갔다. 4.3과 5.18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또 거기가 어디건 상관없이,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면 어디로나 뻗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똑같은 본성을 지니고 사는 인간들의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하나와 전체
지금 대자연과 지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규모와 속도로 허물어지고 있다. 인간 세상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분쟁 지역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 앞에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때, 닥칠 수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이 거대한 사태 앞에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극도의 무력감이다. 바로 이런 때, 한강이 받은 노벨상은 한 사람의 힘이 세상을 흔들고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런 점에서 또 한 사람이 생각난다. 프랑스인 엘리자베스 르쇠르(Elisabeth Leseur, 1866-1914)라는 여성이다.(1889.7.31 Felix Leseur와 결혼: 남편은 무신론자, 그러나 감동적인 부부애와 동지애를 유지했고, 결국은 아내의 사후에 자신에게 남긴 글에 적힌 예언대로, 사제가 된다.)
그녀는 말한다. “내가 나 자신을 1센티미터 들어 올리면, 그것은 내가 지구를 1센티미터 들어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그렇게 해서 참된 인간성에 도달한 사람들 사이에는 거대한 흐름이 형성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아주 작은 고통과 미미한 노력조차도 한데 합쳐져 큰 흐름을 이루어, 그것이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나 지구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나 똑같이 전해져서, 빛과 평화와 절대적 새로움, 그리고 희망을 가져다 준다.”
인간의 겉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속눈에는 보이는 이 흐름. 우리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이 속눈으로 세상을 보며, 거대한 도전 앞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라고 나는 믿는다.
2024.11.11 강론 중에서
이병호 주교(빈첸시오) 전 전주교구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s://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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