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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김수환 추기경

<김수환 추기경이 떠난 자리에>

                              <김수환 추기경이 떠난 자리에>

2009년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으로 국민들의 마음에는 애잔함이 흘러넘쳤다. 명동성당을 향하는 38만명의 조문객이 3Km에 달하는 행렬을 이루었고 짧은 조문을 하기 위해 3시간 이상을 길 위에서 추위에 떨어야 했다.

전국의 주요 성당에 설치된 빈소를 방문한 조문객은 수백만에 이른다고 한다. 장례가 끝났지만 추기경이 안장된 용인 성직자 묘지에 추모객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추기경이 남긴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란 마지막 메시지를 '감사 사랑운동'(가칭)으로 확산하려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고 있는가? 그것은 그분이 남긴 삶의 향기 때문일 것이다.

추기경은 독재자의 서슬 퍼런 총칼 앞에서 양심의 소리, 정의의 소리를 외칠 때에는 더 없이 강하셨지만, 탄광촌 사람들과 철거민들을 비롯한 소외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들을 위로할 때는 한없이 자애로운 분이셨다.

남북관계가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당신이 평양교구장으로 북한 지도부를 돌보지 못한 탓이라고 말하시며 시대의 모든 어려움과 아픔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신 책임감 강한 지도자였다. 그러면서도 그분은 자폐 어린이가 그린 초상화를 가장 아끼셨으며, 당신의 장례를 간소하게 치러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검소한 분이셨다.

종교를 초월해 모든 사람들의 일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셨고, 자화상의 제목을 '바보야"라고 부칠 정도로 자신을 낮추신 겸손한 분이셨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어려울 때마다 큰 어른으로 온화한 미소와 함께 혜안의 말씀을 던져주시며 시대의 사표가 되어주셨다.

추기경은 어떠한 권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지만 모든 이에게 희망이라는 큰 힘을 주신 분이었다. 그분은 버림받고 소외받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함으로써, 사회의 지도자들에게 양심의 소리, 정의의 소리를 전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셨다. 그러기에 큰 목소리와 화려한 어투로 혹은 엄청난 재물로 그분을 모시지 못하였지만 그분이 보여주신 사랑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가진 것 없던 많은 사람들에게 그분의 선종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계시기만 해도 든든한 집안 어른과 같은 분이셨던 그분이 떠난 자리가 왠지 횅하고도 서운하다는 생각에 그렇게 많은 국민들이 그분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고 추모하도록 만들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선종 2,3일 전부터 병실을 찾는 모든 이에게 '서로 사랑하며 사십시오."란 말씀을 남기셨다. 이 말씀은 방문객에게만 한 말이 아니라 각박한 생활에 찌들어 이가적인 삶을 사는 우리에게 삶을 반추하도록 남겨주신 참으로 따뜻한 말씀이다.

더욱이 이 말씀이 가슴 깊이 와닿는 것은 당신 자신이 사랑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셨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의 그 사랑에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평생 동안 과분하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하심으로써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지상에서 그분의 모습을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분이 남긴 삶의 향기가 오랫동안 우리 안에 머무르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먼저 그분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우리 삶을 성찰하여야 한다. 그저 한 순간의 감정으로가 아니라 성찰을 통해 삶의 방향을 전환하여야 한다. 그래서 김수환 추기경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드리고 싶다.

"김수환 추기경님! 우리는 너무 과분한 당신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와 함께 해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보여주셨던 그 사랑의 삶을 내 삶에서도 실현할 수 있도록 기도와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하늘에서 지켜 봐 주세요."

- 밥값 하고 삽시다.(김명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