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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堂-감사 찬미 제사

대림 제1주일

대림 제1주일

<‘그리스도를 입는 일’>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은 전례력으로 ‘새해 첫날’입니다.

오늘부터 ‘대림시기’가 시작됩니다.

‘기다림’이 활짝 피어오르는 시기입니다.

'기다림'이란 양광모 님의 시가 떠오릅니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눈부신 일인가

아침이 기다리는 태양처럼

밤이 기다리는 별처럼

그에게 한 줄기 밝은 빛이 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가슴 따뜻한 일인가

그리하여

그날을 손꼽으며 내가 그를 기다리는 건

또 얼마나 가슴 뜨거운 일인가

태양을 기다리는 아침처럼

별을 기다리는 밤처럼

그를 위해 아름다운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건

또 얼마나 맑은 눈물 같은 일인가

우리는

태어나고 기다리고 죽나니

살아서 가장 햇살 같은 날은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촛불처럼

기다리는 날이라네.

사실 모든 역사는 ‘대림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모든 시간이 대림이었고,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시간도 역시 모두 ‘대림의 시간’입니다.

반대로도 생각해봅니다.

하느님께 있어서도 역시 어제도 오늘도 늘 ‘대림의 시간’이 아닐까요?

우리가 그리스도 오심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열절한 마음으로 망부석이 되어 오늘도 문 앞에 서서 우리가 문을 열어주기만을 내내 기다리고 계시지 않을까요?

오늘 말씀전례는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재림)에 대한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예언자 예레미아는 말합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 그가 세상에 공종과 정의를 이룰 것이다.”

(예레 33,14-15)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1테살 3,13)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날에 나타날 표징들을 알려주시며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루카 21,27)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루카 21,27) 해야 할 일을 세 가지로 말씀하시며 그 이유도 다음과 같이 밝히십니다.

첫째는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루카 21,28)

둘째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루카 21,34-35)

셋째는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이는 다시 말하면, 첫째는 속량이 가까이 왔기에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오시는 분을 향해 희망을 가지라는 말씀이요, 둘째는 그날은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니, 스스로 조심하고 거룩한 생활을 하라는 말씀이요, 셋째는 그날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일”(로마 13,14) 입니다.

방황하고 있던 아우구스티누스를 회개의 삶으로 이끌었던 이 구절은 이렇습니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로마 13,13-14)

그렇습니다.

'주 그리스도를 입고' 살아야, 스스로 조심할 수 있고, 어둠에 속거나 빠지지 일을 막아 주고,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입는 일’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는 일’은 그리스도의 현존 앞에 머무는 일이요,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 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것은 곧 ‘기도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 앞에 깨어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기도하라' 하심은 자신의 약함과 무능력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주님의 능력과 선물을 믿으며, 주님께 소망하고 의탁하라는 말씀이요, '깨어 기도하라' 하심은 그분을 맞아들이기 위해 준비하여 마음을 경계하고, 그분을 향하여 있으라는 말씀이요, '늘 깨어 기도하라' 하심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그분의 동행에 함께 머물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기도하는 것’이 ‘깨어있음의 표시’가 될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현존에 깨어 있으면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하느님에 대한 현전의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깨어있음'이란 ‘이미 오신’ 주님의 현존 안에 머무는 일이요, 동시에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단지 ‘깨어 있어라’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기도 안에서 ‘깨어있을 수 있고’, 기도 안에서 ‘깨어 있을 수 있는 힘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실 기도는 이미 주님 앞에 서 있는 일이고, 그렇게 주님 앞에서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힘이 길러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우리보다 먼저 우리 안에서 깨어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기도’는 우리보다 먼저 우리를 기다리시며 깨어 기도하고 계시는 바로 그분을 만나는 일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요, 경이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깨어있는 이 안에서는 그분 현존의 기쁨이 차오를 것입니다.

그러니 ‘기쁨’이 곧 깨어있음의 표지가 됩니다.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루카 21,34)

주님!

제 마음이 물러지지 않게 하소서.

흔들리더라도 당신을 벗어나지 않고,

넘어지더라도 당신을 붙들고 있게 하소서.

안일과 편리로 무뎌지지 않고,

근심에서 벗어나 당신 사랑에 열렬하며,

늘 깨어 기도하게 하소서.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