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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堂-감사 찬미 제사

독재 탄핵과 "어떤 나라를 원하십니까?"

독재 탄핵과 "어떤 나라를 원하십니까?"

하느님의 말씀 주일, 해외 원조 주일

(느혜8.2-4ㄱ.5-6.8-10.1코린12.12-30.루카1.1-4;4.14-21)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함께걷는예수의길] "더러운 영들은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이르셨다."(마르 3,7-12) 복음 묵상

오늘은 하느님의 말씀 주일이며 해외 원조 주일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일과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이 한 가지 일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하신 일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봉독하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루카 1,18)

이 증언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해방시키는 동시에 해방하는 일입니다.

가난으로부터의 해방,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질병으로부터의 해방,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재난으로부터의 해방 등을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도 큰일을 두 가지나 겪고 있습니다. 하나는 국가 통치자를 바꾸는 정치 차원의 일이고, 다른 하나는 항공 여객기 참사라는 사회 차원의 일입니다. 전자는 검찰 독재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말할 수 있고, 후자는 재난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두 사안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 같지만, 실은 하나로 엮여 있는 사건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하나의 문제였음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국가 통치가 무엇을 최우선으로 이루어지느냐의 문제입니다. 최근 우리는 세월호 참사로부터 시작해서, 이태원 참사를 거쳐 항공 여객기 참사라는 대국민 참사를 세 번이나 겪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사업장에서 안전 사고로 죽어간 생때같은 젊은 청년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국민들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경제우선주의의 민낯을 여실히 보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표결이 있던 지난해 12월 7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민들이 탄핵 시위하는 모습.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해방은 소극적 의미로는 ‘~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하고, 적극적 의미로는 ‘~을 향한 해방’을 뜻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사안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어떤 나라를 원하십니까?’

검찰 독재로부터 해방되어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은지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이에 대한 비전이 없다면, 검찰 독재 탄핵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없습니다. 또다시 국민들의 권리와 안전을 경시하는 다른 억압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독재 대통령 탄핵은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어 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꿈을 꿉니다. 경제 불평등이 없는 나라, 모든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기업 운영, 행복과 보람이 있는 사업장, 모든 사람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사회 정책들, 그리고 정의와 안전에 대한 불감증이 없는 나라를 꿈꿉니다.

우리가 꿈을 꾸고 행동한다면,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1,21)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실현될 것입니다.

심현주 율리안나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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