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파면, 무혈 시민혁명이 이뤄졌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4일 대통령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4일 재판관 8명의 전원일치 의견으로 대통령 윤석열의 파면을 결정했다. 윤석열은 즉시 대통령직을 상실했다. 헌재는 “12·3 비상계엄은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전국민이 목격한 그 밤의 진실을 헌법의 언어로 쉽고 명료하게 풀어낸 지극히 합당한 결론이요, 헌정질서 수호의 최후 보루라는 헌재 소임에 충실한 상식적 귀결이다.
이로써 윤석열의 내란을 몸으로 막아낸 시민의 무혈혁명은 완수됐다. 헌정질서 붕괴와 민주주의 퇴행의 대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은 내란 극복과 민주공화국 재건의 발판을 마련했다.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나라를 일으켜 세운 평범한 시민들이 또다시, 기어이 승리한 것이다.
헌재는 국회 측이 제시한 탄핵 사유를 모두 인정했다. 위헌·위법으로 점철된 비상계엄이었다는 것이다. 헌재는 윤석열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없었는데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이 제기한 비상계엄 선포 사유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국회의 탄핵소추, 입법, 예산안 심의 등의 권한행사가 중대한 위기상황을 현실적으로 발생시켰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부정선거 의혹은 비상계엄 선포 사유가 될 수 없고 의혹 자체가 타당하지도 않다고 했다. ‘경고성 계엄’ ‘호소용 계엄’은 계엄법이 정한 계엄 선포의 목적이 아닐 뿐더러, 12·3 비상계엄은 ‘경고성 계엄’ ‘호소용 계엄’도 아니었다고 했다. 계엄에 앞서 국무회의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고 했다.
헌재는 윤석열이 군을 동원해 헌법이 보장한 국회의 계엄해제요구안 표결을 막으려 했고,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 전직 대법원장·대법관 등을 체포하려 했다는 국회 측 주장도 모두 받아들였다. 정치활동을 금지한 계엄포고령 1호, 선관위 압수수색도 위헌·위법이고, 전직 대법원장·대법관 체포 시도는 사법권 독립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헌재는 거대 야당의 일방독주가 국정마비를 초래했다는 윤석열의 주장은 존중되어야 한다면서도 윤석열 역시 국회를 배제 대상으로 삼았고, 이는 민주정치의 전제를 허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총선 결과가 피청구인이 의도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야당을 지지한 국민의 의사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되었다”고 했다.
결국 비상계엄의 본질은 총선 민심에 대한 위헌·위법적 불복 시도이고, 그 자체가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대통령의 사회통합 책무를 배반한 중대한 범죄행위라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헌재는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며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결론지었다.
헌재의 윤석열 파면 결정문은 대다수 국민의 주권적 의지를 헌법의 문법에 맞춰 추인한 문서로 볼 수 있다. 헌재의 파면 결정 이전에 국회의 탄핵이 있었고, 그 전에 12·3 내란에 맨몸으로 맞선 시민들이 있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다”고 했다. 윤석열 파면은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남녀노소 평범한 시민들, 헌법적 가치와 민주주의적 규범을 체화한 ‘제복입은 시민들’의 위대한 승리이다.
부마항쟁, 5·18 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으로 면면히 이어진 4·19혁명의 헌법 정신이 오늘 되살아나 민주주의를 구하고 추락한 국격을 다시 높인 것이다. 민주주의 퇴행을 겪고 있는 각국 시민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는 세계사적 사건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윤석열 파면으로 내란 극복 1막의 대단원은 막을 내렸다. 국가적 혼란을 수습할 중요한 단초가 마련됐고, 넉달 여간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던 시민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이제는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보다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을 때다.
그러기 위해서도 필요한 게 분열된 국론의 통합이자, 헌재 결정에 대한 승복이다. 다른 생각들이 무람없이 어울리는 사회,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사회, 논쟁이 전쟁이 되지 않는 사회, 이견이 적대와 배제의 이유가 되지 않는 사회, 사회구성원들의 삶의 질이 보장되는 보다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갈 때야 비로소 내란은 최종적으로 극복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파면은 그런 사회를 만드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 경향신문 사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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