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 제5주일
(이사43.16-21.필리3.8-14.요한8.1-11)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저는 1963년에 태어났습니다. 저희 세대를 ‘베이비 붐 세대’라고 했고 ‘386 세대’라고 했습니다. 어린 시절 자주 보던 풍경이 있습니다. ‘연탄가스 중독, 만원 버스, 공중화장실, 공중전화, 동네 놀이터’입니다. 모두가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았습니다.
어느날부터인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라는 새마을 노래도 들었습니다.
‘국민소득 1,000불과 수출 100억 불’은 1980년에는 우리가 이루어야 할 ‘꿈’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던 대한민국은 1980년이 오기 전에 국민소득 1,000불과 수출 100억 불이라는 ‘산’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풍경은 바뀌었습니다. ‘아파트, 지하철, 자동차, 해외여행 자유화, 중동 건설, 월남전 파병’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문화와 예술은 세계 문화와 예술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발돋움하였습니다. ‘상전벽해, 경천동지’라는 말이 어울리는 변화가 지난 50년 동안 있었고, 저는 그 삶의 현장을 목격하였습니다.
오늘은 사순 제5주일입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희망과 변화’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그런 희망을 이렇게 전해 줍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들짐승들과 승냥이와 타조들도 나를 공경하리니 내가 선택 한 나의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광야에는 샘을 내고 사막에는 강을 열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답송은 그 희망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 유배라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느님께 예배드렸던 성전은 파괴되었고, 낯선 땅인 바빌로니아로 유배를 가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민자의 삶을 체험했습니다. 언어의 장벽, 문화의 장벽,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희망을 선포하였습니다. 마침내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했던 희망은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정한 여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부정한 여인은 돌에 맞는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돌에 맞으면 죽을 수 있었습니다. 아니 죽을 때까지 돌에 맞아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이 여인을 어떻게 할까요?’ 여인으로서 그 자리는 심판의 자리였습니다. 이제 곧 돌에 맞아야 하는 고통의 자리였습니다. 자기의 잘못이 드러나며 죽어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이 없으셨습니다. 그저 자리에 앉아 무엇인가를 쓰고 계셨습니다. 한참이 지난 다음 예수님께서는 돌을 들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죄가 없는 사람들이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십시오.’
그러자 나이가 많은 사람들부터 자리를 떠났습니다.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자신들도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이야기합니다. ‘당신도 돌아가시오. 그리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시오.’
예수님께 용서받았던 여인에게 이제 심판의 자리였던 곳, 돌에 맞아 죽어야 했던 곳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되었습니다. 죽어야 할 여인은 이제 새롭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시간과 장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다면 척박한 광야라 할지라도, 설사 감옥이라 할지라도 그곳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헤로데의 궁궐일지라도, 풍족한 삶일지라도 새 하늘과 새 땅은 될 수 없습니다.
순교자들이 죽었던 새남터, 절두산, 서소문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되어서 순례자들이 찾는 성지가 되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용서와 평화가 있는 곳이라면 곧 돌에 맞아 죽어야 할 곳일지라도 새 하늘과 새 땅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용서받았던 그 여인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발라 드렸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길에 끝까지 함께 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났습니다. 주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다면, 용서와 평화가 있다면 지금 이곳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체험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나는 죽음을 겪으신 그분을 닮아, 그분과 그분 부활의 힘을 알고 그분 고난에 동참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살아나,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내 앞에 있는 것을 향해 내 달리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 말은 온전한 신앙고백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를 초대하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도 바오로 사도와 같은 열정으로 우리의 사랑을 요구하는 이웃들에게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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