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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福音 묵상

사순 제5주간 금요일

 

사순 제5주간 금요일

(예레20.10-13.요한10.31-42)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신학교에서 신학을 배웠습니다. 가톨릭의 가르침을 신학적으로 배우는 것이 교의 신학입니다. 교의 신학 중에 ‘구원론’이 있습니다. 구원론의 핵심은 현세에서의 축복과 은총도 있겠지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구원론은 개인의 구원도 있겠지만, 공동체의 구원도 이야기합니다. 연못 속의 물고기는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연못 자체가 썩어간다면 물고기는 연못에서 살 수 없게 됩니다. 구원의 대상은 영적인 것도 있고, 생태계에 관한 것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삶을 따른다면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죄, 악, 죽음’으로부터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의 구원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자연을 보호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죄에서 벗어나 천국 가는 것"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단순히 내세에서 천국 가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삶에서 어떻게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고, 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어떻게 보살피느냐도 구원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영적 구원은 '죄에서 해방되는 길'입니다.

먼저, 우리가 잘 아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있습니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는 강한 힘을 가져야 한다고 믿고, 돈 많은 노파를 살해합니다. 하지만 그 뒤로 그의 마음은 지옥이 되어 버립니다.

죄책감과 두려움 속에서 헤매다가 결국 그는 ‘소냐’라는 신앙 깊은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소냐는 성경을 읽어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무릎을 꿇고, 회개하세요. 그러면 새로운 삶이 시작될 거예요." 라스콜니코프는 결국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감옥에서 긴 세월을 보내며 변화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하느님께 등을 돌릴 때,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잃습니다. 하지만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가면 새로운 구원의 길이 열립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기 위함입니다. 라스콜니코프가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았듯이, 우리도 그 길을 걸어야 합니다.

구원은 인간만을 위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온 피조물이,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 (로마서 8:22)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많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환경 파괴,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많은 생명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태적 구원의 문제를 다룬 문학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소로는 깊은 숲속에서 혼자 살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실천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소비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이야말로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이 말이 우리 신앙과 어떻게 연결될까요? 우리는 때때로 필요 이상의 것을 소비하며, 편리함을 위해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황님께서 강조하신 것처럼, 우리는 이 세상의 청지기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보살피고 가꾸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은 무엇일까요? 여기에서 또 하나의 문학 작품을 떠올려 봅니다. 바로 『반지의 제왕』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 프로도는 사우론의 절대 반지를 없애기 위해 위험한 여정을 떠납니다. 그는 수많은 유혹과 고난을 겪으며 반지를 파괴하려 하지만, 결국 그를 지탱해 준 것은 친구들의 희생과 사랑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하셨고, 그 사랑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기적인 삶을 벗어나, 서로 사랑하고, 나누고, 창조 세계를 보살필 때, 우리는 영적 구원과 생태적 구원을 함께 이루어 가는 길에 서게 됩니다.

우리도 라스콜니코프처럼 자신의 죄를 성찰하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미사 안에서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소로처럼 검소한 삶을 실천하고, 생태계를 보호하는 작은 실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 하나, 음식 한 조각도 하느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프로도처럼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이웃과 세상을 위한 희생을 실천해야 합니다. 구원은 '하느님과의 조화, 이웃과의 조화, 자연과의 조화'입니다. 구원은 단순히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곧 구원의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는 하느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피조물과의 관계가 함께 가야 합니다.

영적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회개하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이 세상도 함께 구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꾸고,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당신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우리가 죄에 죽고 의로움에 살게 하셨네. 그분의 상처로 우리는 병이 나았네.”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