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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한국 소멸’을 막을 수 있을까 [시민편집인의 눈]

누가 ‘한국 소멸’을 막을 수 있을까 [시민편집인의 눈]

독일 유튜브 지식 채널 ‘쿠르츠게작트’의 ‘한국은 끝났다’ 영상 갈무리.

제정임 |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한국인이다. 이 영상을 보고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영상이 충격적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내면 깊이 느끼고 있던 것을 큰 소리로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난달 독일 유튜브 지식 채널 ‘쿠르츠게작트’의 한 영상에 영어로 달린 댓글이다. ‘한국은 끝났다’는 제목의 이 영상은 출산율 세계 최저인 한국이 인구·경제·문화 등 모든 면에서 소멸할 것이란 주장을 담았는데, 무려 1100만명이 봤고 7만2천여개 댓글이 달렸다.

예컨대 2023년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의 기대 자녀 수 평균)이 0.72인 한국은 약 5170만명인 인구가 2060년 약 3580만명으로 쪼그라들고, 형제도 자녀도 없는 홀몸노인이 득시글한 ‘세계에서 가장 늙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영상은 전망한다.

생산인구가 줄어 국민연금이 고갈되고, 경제는 영구적으로 침체하며, 대도시 외 많은 지역에서 주민이 떠나 ‘유령 마을’이 창궐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자극적인 제목과 달리, 영상에 쓰인 숫자는 국내외 통계와 논문을 바탕으로 한국 경제학자의 자문까지 거친 것이라 반박할 거리가 없다.

물론 이 영상은 유엔의 전망 가운데 최근 한국의 궤적에 가까운 ‘최악의 시나리오’를 전제한 것이라, ‘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댓글 쓴 이는 30대 초반인 자신이 어릴 때부터 내몰렸던 ‘무한 경쟁’을 되짚으며 ‘가망이 없다’고 단정한다.

“한국의 정책은, 우리처럼 살아보지도 않았고 이런 절망을 느껴본 적도 없는 나이 많은 남성들이 만든다. 한국에선 단지 인구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희망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그는 학교와 직장에서 강요되는 경쟁, 불안정한 일자리, 비싼 주거 비용 등을 놔두고 돈만 좀 주면 아이를 낳을 것이라 보는 것은 ‘망가진 시스템에 일회용 밴드 붙이기’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오는 6월3일 대통령 선거는 이렇게 비관적인 이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후보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지지율 상위권 출마자 중 국민의힘 후보는 여성, 노동, 복지 등에서 모두 퇴행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이어갈 태세다.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불평등, 노동환경 등의 개선을 말하면서도 ‘4기 신도시 건설’ ‘수도권광역급행철도 확대’ 등 개발 공약으로 혼선을 준다.

서울의 재개발·재건축이 쉬워지고, 수도권 교통망이 확장되고,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까지 들어서면 수도권엔 사람이 더 몰리고 부동산 가격도 오를 것이다. 지역엔 일자리가 없어서, 서울엔 살 집이 없어서, 아이를 못 갖는 현상이 오히려 심해질 수 있다.

저출생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이 응축된 결과여서다. 불평등과 생존 경쟁, 장시간 노동과 고용 불안, 수도권 집중과 부동산 투기에 따른 높은 주거비, 지역의 소외 등이 모두 청년의 삶을 불안하게 한다.

유리천장(여성의 승진을 막는 한계) 지수와 성별 임금격차 등이 보여주는 성차별 구조는 여성이 직업과 아이를 양자택일하게 만든다. 그런데 저출생 관련 정부 조직과 거대 정당의 기구들은 이런 현실에 이해도가 낮은 중고령 남성들이 이끌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 언론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번 대선에서야말로 저출생 의제가 파묻히지 않도록 공론장 구실을 해야 하지 않을까. 대법원의 이례적인 선거법 재판 등으로 대선판이 요동치고 있지만, 누군가는 ‘대선 이후의 정책 과제’를 챙겨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한겨레가 지난달 5일 이후 ‘6·3 대선’으로 분류한 700여건의 기사 가운데 정책 관련 보도가 100건이 채 안 되며, 그나마 대부분 발표 사실을 단순 전달한 것들이었다는 점은 아쉽다. 저출생을 주요하게 다룬 심층 보도는 한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쿠르츠게작트의 영상 제작을 도운 황지수 서울대 교수는 에스비에스(SBS) 인터뷰에서 “저출생은 인구구조 급변으로 경제 활력 저하, 지역 불균형 심화, 개인의 고립 등이 나타나는 심각한 문제”라며 “국가 어젠다 1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은 저출생 해결을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당사자와 전문가의 목소리를 전하고 후보들의 바른 답변을 받아내야 한다. ‘한국은 끝났다’는 비관 대신 희망이 커지도록, 남은 대선 기간 분발해주길 바란다.